내비게이션은 늘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합니다. 강릉 톨게이트(A)를 출발해 동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헌화로(B)까지, 추천 경로는 약 26km, 예상 이동 시간은 32분. 하지만 이번에는 그 익숙한 안내를 벗어납니다. 강릉은 바다의 도시이면서 커피의 도시입니다.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커피가 기억으로 남는 곳은 많지 않죠. 강릉의 커피는 넓은 바다만큼이나 진한 인상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내비게이션이 찾지 못하는 ‘커피’라는 취향을 좌표로 입력해봅니다. 목적지는 같지만 경유지는 여러 곳으로 늘어났고, 최단 거리였던 26km는 어느새 86km로 늘어났죠. 30분 남짓이면 도착할 거리가 꼬박 하루가 걸리는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강릉의 국도와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며 각 카페의 시그니처 커피를 맛보고, 사람들로 붐비는 유명 카페에서는 원두를 챙겨 나와 차에서 직접 커피를 내립니다. 순간 차는 이동 수단이 아닌 가장 맛있는 커피를 위한 안락한 공간이 됩니다.
커피에서 ‘클린 컵(Clean Cup)’은 잡맛과 거친 뒷맛 없이 향과 맛이 또렷하게 정리된 상태를 뜻합니다. 산미가 날카롭게 튀지 않고, 단맛과 바디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마지막 한 모금까지 톤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번 여정, 아이오닉9의 주행 역시 과하게 튀지 않고 일정한 흐름을 유지했습니다. 목적지보다 과정이 더 선명하게 남는 이동이었죠.
좋은 커피는 시간을 들여 마셔야 합니다. 좋은 이동도 비슷합니다. 빠르게 도착하는 대신, 천천히 좋은 기분을 만끽하며 목적지에 이르는 동안의 감각을 또렷하게 남기죠. 그래서 우리는 이번 여정에서 ‘도착’보다 ‘과정’을 선택했습니다.
강릉 IC에서 출발해 처음 방문한 곳은 스페셜티 커피의 산증인,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입니다.
스페셜티 커피는 원두의 산지와 품종, 가공, 로스팅, 추출에 이르는 전 과정을 관리한 커피로,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 기준으로 커핑(Cupping) 점수 80점 이상을 획득해야 그 자격을 얻습니다.
이 곳은 최종 목적지인 헌화로와는 반대 방향이지만, 강릉의 커피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입니다. 한국에 스페셜티 커피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전부터 산지와 품종을 조명해 온 상징적인 장소이기 때문이죠.
이곳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강한 바람이 이어졌습니다. 대형 SUV는 차체가 큰 만큼 외부 환경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단순한 실내 정숙함이 아니라,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도 스티어링이 흔들리지 않고, 차체가 흐트러짐 없이 궤적을 유지하는 안정감입니다.
아이오닉 9은 ‘에어로스테틱(Aerosthetic)’ 실루엣을 통해 공기 흐름을 유연하게 정리합니다. 특히 앞 범퍼 하단의 ‘듀얼 모션 액티브 에어 플랩’은 상황에 따라 기류를 적극적으로 제어해 대형 SUV임에도 0.259Cd라는 낮은 공기저항계수를 달성했습니다.
그래서 이 차를 활용한 고속 주행은 단순히 조용한 것을 넘어 압도적인 안정감을 선사합니다. 기류가 정돈되니 풍절음이 줄고 차체 주변 압력이 일정하게 유지돼, 운전자가 미세하게 조향을 보정해야 하는 피로가 현저히 줄어들죠.
공력이 만든 안정성 위에 견고한 섀시와 정밀한 구동 제어가 더해져, 고속에서도 차량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달립니다. 히든 안테나 같은 디테일 또한 미세한 저항까지 걸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카페 문을 열면 은은한 원두 향이 공간을 채웁니다. 이곳의 시그너처인 핸드 드립 커피는 90℃ 안팎의 물이 원두층을 통과하며 향을 끌어내는 방식입니다. 물줄기의 굵기와 속도가 조금만 달라도 맛의 균형은 미묘하게 변합니다.
고령에도 박이추 선생님은 여전히 드립 커피를 직접 내립니다. 천천히, 그리고 일정하게. 그 리듬 덕분인지 커피는 식어가는 동안에도 맛의 균형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좋은 커피는 온도가 내려가면서 구조가 더 또렷해지기 때문입니다. 향이 걷히고 나면 맛의 뼈대가 드러납니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처음 톤을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결국 흐름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결과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주행과 추출은 서로 닮아 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사천진해수욕장과 맞닿은 ‘바우카페’입니다.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에서 해안길을 향해 3~4분만 달리면 닿습니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흑임자 라테입니다. 흑임자는 볶는 온도에 따라 향이 크게 달라집니다. 잘 볶은 흑임자는 견과류나 다크 초콜릿을 닮은 깊은 고소함이 특징입니다. 질감이 부드럽고, 우유와 만나면 한층 더 크리미해지죠. 바우카페의 커다란 통창 앞에 앉아 바다를 보며 여유롭게 흑임자 라테를 즐깁니다. 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닷바람 덕분에 산뜻한 산미보다 고소하고 둥근 향이 또렷하게 느껴지고, 염분을 머금은 공기 속에서는 향이 더 부드럽게 퍼집니다.
해안과 맞닿은 카페를 나와, 이동 전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잠시 차를 정차해봅니다. 실내는 아이오닉 9의 성격을 아주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대형 전기 SUV가 실내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제시하죠. 차체 크기는 5,060×1,980×1,790mm, 휠베이스는 3,130mm에 달합니다.
이 수치는 단순한 크기가 아니라 1열부터 3열까지 공간의 톤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반입니다. 아이오닉 9은 2열에서 3열로 이동해도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지 않도록 설계됐습니다. E-GMP 플랫폼 덕분에 3열까지 이어진 평평한 바닥은 꼭 편안한 카페 소파에 앉은 듯한 안정감을 줍니다.
내륙 쪽 ‘크레마 코스타’로 향하는 길에는 짧고 긴 코너가 연이어 등장합니다. 아이오닉 9은 스티어링을 돌린 만큼 정확하게 방향을 바꿉니다. 차체가 한 박자 늦게 따라오거나 필요 이상으로 돌아나가는 불안한 움직임이 없습니다. 큰 차가 코너에서 ‘잘 돈다’는 말은 종종 과장에 가깝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민첩함이 아니라 입력한 만큼 움직이는 예측 가능한 반응입니다.
아이오닉 9은 전기차의 장점인 전기모터의 정교한 토크 제어로 앞뒤 구동력을 즉각적으로 배분합니다. 함께 달리는 차는 AWD 모델로, 코너 진입 시 바깥으로 밀리는 힘을 줄이고, 무게가 쏠리는 순간에도 차체 균형을 빠르게 바로잡습니다. 그 결과 차량은 운전자의 조향 입력과 차의 움직임 사이에 어긋남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코너는 긴장 구간이 아니라 흐름을 이어가는 구간이 되죠.
크레마 코스타의 시그너처 메뉴는 파나마 게이샤입니다. 게이샤는 원래 에티오피아 게샤 지역에서 발견된 품종이지만, 파나마 보케테 지역의 고지대 환경에서 재배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품종의 등장은 커피 평가의 기준 또한 바꿔놓았습니다. 묵직한 보디감보다 향의 정교함과 선명도를 더 중시하는 흐름이 본격화된 것이죠.
크레마 코스타가 선보이는 파나마 게이샤 역시 그 특징을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잔을 가까이하면 가늘고 맑은 꽃 향이 먼저 스치고, 이어서 산뜻한 산미가 깨끗한 여운으로 남습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커피’입니다. 존재감은 분명하지만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기억에 남는 맛입니다.
크레마 코스타를 지나 강릉 커피 역사의 상징인 ‘커피커퍼’로 향했습니다. 안목 커피거리의 시작점이자 커피 박물관을 운영하는 이곳에는 강릉이 ‘커피 도시’로 불리기까지의 시간과 맥락이 겹겹이 쌓여 있죠. 이 구간에서는 아이오닉 9의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이 빛을 발합니다. 전방 충돌방지 보조, 차로 유지 보조 2, 고속도로 주행 보조 2 등 최첨단 기능들은 고속도로와 국도를 가리지 않고 운전자의 긴장을 효과적으로 덜어줍니다.
도착했을 때의 컨디션이 주행의 완성도라면, 아이오닉 9은 이동의 마지막 순간까지 여유를 남겨두는 차입니다. 그 여유에서 플래그십다운 품격이 드러납니다.
커피커퍼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전통을 담은 ‘오스만 커피’를 선택했습니다. 고온의 모래 위에서 열을 균일하게 전달해 추출하는 이 방식은 급격한 온도 변화를 막아 거품층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커피죠. 진하고 걸쭉한 질감 위로 볶은 견과류와 초콜릿 향이 올라오며 묵직한 쌉쌀함이 길게 이어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함께 제공되는 물 한 모금의 역할입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곁들이는 물은 입안을 정돈하고 미각을 다시 맑은 상태로 되돌려놓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전체 경험의 흐름을 정리해주는 요소가 있다는 점에서, 이 차와 커피는 닮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세심한 배려가 결국 한 잔의 인상과 한 번의 주행을 완성합니다.
이렇게 달리다 보면 빠질 수 없는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충전입니다. 아무리 편안하게 달려도 배터리 게이지가 불안하면 여정 전체가 긴장으로 바뀌죠. 아이오닉 9은 110.3kWh 배터리가 들어가 1회 충전 시 최대 532km(19인치 휠 2WD 기준)를 주행할 수 있습니다. 800V 초고속 충전 시스템을 통해 350kW급 충전기를 사용하면 배터리 용량의 10%에서 80%까지 약 24분 만에 충전이 가능합니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그리고 강릉에서 여러 카페를 들렀음에도 아이오닉 9의 주행 가능 거리는 여전히 여유롭습니다. 숫자가 주는 안도감은 생각보다 큽니다.
오늘 맛볼 마지막 한 잔은 강릉 커피의 터줏대감, ‘테라로사’입니다. 늘 북적이는 이곳에서는 잘 로스팅된 원두를 테이크아웃해 해변으로 향해봅니다.
V2L(Vehicle to Load) 커넥터에 커피포트를 연결하자, 차에 저장된 전기가 물을 데우는 열로 바뀝니다. 이동을 위해 축적해둔 에너지가 이제는 휴식을 위한 온기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커피의 98%는 물입니다. 어떤 물을 어떤 온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 전기차 또한 에너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동의 성격이 바뀝니다.
천천히 물을 부어 균형을 맞추면, 드립 커피 특유의 향이 바닷바람과 자연스럽게 섞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한 잔은 카페 안에서 마실 때보다 더 깊고 선명한 단맛을 냅니다.
그 순간 아이오닉 9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머무는 공간이 됩니다. 충전이 주는 안도감, 균형 잡힌 움직임이 만든 편안함, 그리고 바다 앞에서 완성한 한 잔의 커피. 목적지는 특정 좌표가 아닌 우리의 ‘취향’이었습니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음미한 뒤, 비로소 최종 목적지인 헌화로로 향합니다.
26km는 효율적인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택한 86km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빠른 길은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명확한 답이지만, 취향에 따라 설계한 우회로는 더 깊은 만족을 남깁니다. 돌아가는 길이 비효율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 시간을 온전히 여유로 바꿔준 아이오닉 9 덕분입니다. 공간과 안정감, 그리고 일정한 주행 리듬으로 완성한 시간. 넉넉한 실내에서 시작된 안락함은 흔들림 없는 균형과 부드러운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86km의 커피 로드는 하나의 ‘클린 컵’처럼 마무리되었습니다. 속도를 줄이고 취향을 따르고 싶은 순간, 목적지를 조금 멀리 설정하고 싶은 날, 이 차는 과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 이동을 완성합니다.
이번 여정에서 방문한 카페를 포함해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박찬과 카페 스케쳐 카콜이 직접 큐레이션한 22곳의 카페를 모은 강릉 카페 지도. 아래 버튼을 클릭하면 네이버지도 리스트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