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개최된 사우디 월드 디펜스 쇼(World Defense Show, 이하 WDS)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방위산업 전시회입니다. 각국 정부와 군, 방산 기업이 한자리에 모여 국가 방어에 필요한 기술과 장비, 협력 방안을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전시명에 ‘디펜스’가 들어간 이유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WDS 2026은 단순한 무기 전시를 넘어 국가 방어 전략과 기술 협력의 핵심 장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89개국 1,486개 기업이 참가했으며, 121개국에서 온 500여 개의 공식 대표단이 현장을 찾아 약 330억 사우디아라비아 리얄(약 1조 2,600억 원) 규모의 계약과 협약을 성사시켰습니다.
WDS 2026은 현대자동차그룹의 방산 주역인 현대위아와 현대로템이 중동 시장에서의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 하고 수출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교두보이기도 했습니다. 현대위아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단독 부스를 마련하며 ‘모빌리티 기반 화력 운용 체계’라는 방향을 제시했고, 기존 고정형 화력 운용의 한계를 보완하는 다양한 방어 솔루션 역량을 선보였습니다.
현대로템은 단순한 제품 공급자를 넘어 사우디의 방어 역량 고도화를 함께 설계하는 ‘기술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강조했습니다. K2 전차를 중심으로 한 ‘K2 패밀리’ 전략을 통해 운용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으며, 수소연료전지 기반의 ‘블랙 베일’ 및 ‘H2WAVe’, 다목적 무인차량 등 차세대 플랫폼 방향성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전시 구성 또한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했습니다. 항공·지상·해상·우주·보안 분야를 통합해 소개하며, 개별 장비가 아닌 연결성과 운용 환경을 함께 제시했습니다. 미래 인재 프로그램과 공급망 전시를 병행해, 방산을 기술·산업·인재가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생태계로 조명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이처럼 WDS 2026은 각국이 방어 역량을 산업 전략과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자리였습니다.
최근 방위산업은 단일 장비의 성능 경쟁에서 벗어나 기동성·연결성·지능화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화력을 한 지점에서 얼마나 강하게 발휘하느냐보다, 얼마나 빠르게 이동해 임무를 수행하고 짧은 시간 안에 안전성을 확보하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었죠. 무인화와 AI 기술이 더해지면서, 경쟁의 축도 개별 장비가 아닌 운용 체계 전반의 완성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현대위아가 WDS 2026에서 선보인 모빌리티 기반 화력 운용 체계 역시 이러한 흐름 위에 놓여 있습니다. 화포의 위력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어떻게 이동하고 연결되며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점이 특징입니다. 현대위아는 자동차 부품과 로봇 분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방산 영역에서도 자주포·박격포·함포 등 다양한 화포 체계를 오랜 기간 개발·생산해 온 기업입니다. 최근에는 차량과 결합한 화력 운용 기술을 더하며 영역을 확장해왔습니다. 이번 WDS에서 처음으로 단독 부스를 마련한 배경 역시 이러한 변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부스 구성 또한 기존의 화포 전시 방식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화포를 개별 장비로 나열하는 대신, 실제 전술 차량에 화력 장비를 탑재한 형태로 연출해 차량 위에서 화력이 어떻게 운용되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자연스럽게 관람객의 시선은 화포 자체보다 이동, 배치, 운용 환경으로 이어졌습니다.
부스 전반을 관통한 키워드는 단연 ‘모빌리티’였습니다. 현대위아는 화력이 더 이상 한 지점에 고정된 자산이 아니라, 상황 변화에 따라 이동하고 재배치되는 유동적 요소로 바라봤습니다. 차량 위에서 사격·방호·사격통제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중심으로, 화력의 크기보다 신속한 이동과 대응 방식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화포 제조에 머무르지 않고, 운용 체계 전반을 함께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화력 장비와 차량, 사격 통제 시스템을 하나의 구성으로 묶어 보여주며, 실제 전장에서의 활용 방식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이러한 방향성은 방산 행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현대위아는 CES 2026에 처음 부스를 마련해 ‘연결의 여정’을 주제로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AI·센서·로봇 기술이 결합된 이동 수단의 진화를 선보였으며 분산배치형 HVAC, 스마트 벤트, 복사워머 등 민수 모빌리티를 위한 기술도 공개했습니다. 적용 분야는 다르지만, 환경 인지·개인화·에너지 효율이라는 핵심 기술 축적은 방산 영역에서도 확장 가능한 기반이 됩니다.
이 같은 변화는 IDEX 2025에서 이미 예고된 바 있습니다. 경량화 105mm 자주포, 차량탑재형 81mm 박격포, 대드론방어체계(ADS) 등 모빌리티 기반 화력 체계를 선보이며 방향성을 드러냈죠. 이번 WDS에서는 이들 체계를 다시 전면에 배치하되, 단순한 장비 공개를 넘어 실제 운용 환경과 연결 구조에 대한 설명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이번 현대위아의 전시는 개별 무기의 성능 경쟁이 아니라, 화력이 어떻게 이동하고 연결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민수와 방산을 가로지르며 축적한 기술 역량이 전장에서의 기동성과 운용 효율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위아의 행보는 ‘모빌리티 기반 화력’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위아 부스의 중심에는 경량화 105mm 자주포가 자리했습니다. 경량화 105mm 자주포는 1978년부터 축적한 현대위아의 화포 기술을 바탕으로 현대 전장이 요구하는 능력을 갖춘 핵심 차량입니다. 기존 105mm 화포를 소형 전술차량에 탑재한 체계로, 사격 직후 즉시 위치를 이탈해 생존성을 확보하는 이른바 ‘슈트 앤 스쿠트(Shoot & Scoot)’ 운용 개념을 전제로 설계됐습니다.
이 장비는 국방신속획득기술원의 신속시범사업을 통해 개발됐으며, 기존 차륜형 자주포 대비 중량을 줄여 전개 속도와 기동성을 동시에 고려했습니다. 최대 사거리는 약 18km로, 방열 자동화와 사격 제원 데이터 링크를 적용해 임무 준비 시간을 단축했습니다. 험지 주행 성능을 강화했으며, 기동 헬기를 활용한 공중 수송 운용까지 염두에 둔 점도 특징입니다. 운용 인원을 최소화해 소규모 병력으로도 화력 운용이 가능하도록 구성했습니다.
함께 전시한 차량탑재형 81mm 박격포 역시 기동성을 중심에 둔 체계입니다. 자동 방열 방식을 적용해 사격 준비 시간을 줄였고, 항법장치와 전기식 구동기, 제어기를 결합해 신속한 방열이 가능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소형 전술차량 기반의 기동 플랫폼을 적용했으며, 운용 인원을 3명 수준으로 최소화했습니다. 차량 운용이 어려운 환경에서는 기존 박격포 방식으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도록 운용 유연성도 확보했습니다.
AI 기반 방어체계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 대한민국 육군 최전방을 책임지는 현대위아의 원격사격통제체계(RCWS)는 AI 알고리즘을 적용해 표적 추적과 사격 정확도를 높이고, 운용자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발됐습니다. 자세 안정화 제어를 통해 기동 중에도 실시간으로 목표물을 추적하면서 뛰어난 사격 정확도를 자랑합니다. 전시 현장에서는 7.62mm 기관총을 탑재한 소형 RCWS 실물을 공개했으며, 향후 대드론 체계의 하드 킬(물리적 대응)과 연동 가능한 구조임을 강조했습니다.
드론 대응 솔루션도 선보였습니다. 현대위아의 대드론방어체계는 레이더, 영상 식별 장치, 전파 방해 장치를 결합한 일체형 구조로 탐지 음영을 최소화했습니다. AI 기반 표적 분류 기능을 통해 드론과 차량, 기타 비행체를 구분할 수 있으며, 전파 교란 기반 대응과 물리적 대응을 함께 고려한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상황과 운용 목적에 따라 대응 강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도 특징입니다.
현대로템의 전시는 개별 장비를 나열하는 방식에서, 지상무기체계가 어디까지 확장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K2 전차를 중심으로 한 계열화 전략은 기갑 전력의 운용 효율을 높이는 해법을 제시했고, HR-셰르파와 블랙 베일은 무인화와 전동화가 결합된 미래 전장의 방향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지난 ADEX 2025에서 ‘지상에서 우주까지’를 키워드로 수소 기반 무인 플랫폼과 램제트·극초음속 엔진 등 항공우주 기술을 공개하며 방산 영역의 외연을 확장했던 비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번 부스의 전면에는 전차와 장갑차 등 현대로템을 대표하는 지상 플랫폼이 배치됐고, 그 주변으로 무인차량과 드론 대응 기술이 이어졌습니다. 관람객은 대형 유인 플랫폼에서 출발해 점차 소형·무인 체계로 이동하는 동선을 따라 전시를 경험하게 됩니다.
입구 쪽에 자리한 전차와 장갑차는 이미 각국 군에서 운용 중이거나 실전 배치를 염두에 둔 플랫폼입니다. 현대로템은 이를 단독 장비로 제시하기보다, 센서와 통신 장비, 무인 운용 개념을 함께 배치해 하나의 차량이 전장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어떻게 다른 체계와 연결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부스 중반부에서는 무인차량과 원격 운용 기술이 등장합니다. 탑승 인원 없이도 주행과 임무 수행이 가능한 차량을 중심으로, 유·무인 복합 운용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했습니다. 위험 지역에는 무인차량을 먼저 투입하고, 후방에서 유인 플랫폼이 이를 통제·지원하는 방식입니다. 관람객이 실제 작전 장면을 떠올릴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전시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플랫폼’입니다. 현대로템은 개별 무기의 성능 경쟁보다, 하나의 차량이나 차체가 다양한 임무로 확장될 수 있는 구조에 주목했습니다. 동일한 기반 위에 무장, 정찰 장비, 통신 체계를 선택적으로 얹어 역할을 전환하는 모듈형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현대로템 부스는 전차·장갑차·무인 시스템이 분리된 장비가 아니라 하나의 작전 체계로 엮여 운용되는 흐름을 보여줬습니다. 지상 전력이 어떻게 연결되고 확장되는지, 그리고 유·무인 플랫폼이 어떤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한 전시였습니다.
전차 계열화 전략을 명확히 드러냈습니다. 사우디 작전 환경을 반영해 현지화한 K2 전차를 주력 플랫폼으로 제시하고, 여기에 구난전차(ARV), 장애물개척전차(CEV)를 포함한 이른바 ‘K2 패밀리’를 함께 소개했습니다. 전차 한 대의 성능을 강조하기보다, 기갑 전력 운용 전반을 하나의 체계로 설명한 구성이었습니다.
K600 장애물개척전차는 기동로를 확보하고, K1 구난전차는 손상된 전차와 장비를 회수합니다. 현대로템은 이들 파생 모델을 나란히 배치하며, 기갑 전력은 전투 수행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동·유지·복구까지 아우르는 종합 체계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특히 중동 지역 운용 환경을 고려한 계열화 전략은 장기 운용과 산업 협력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접근으로 읽힙니다. 차륜형 전력에서는 K808 기반 플랫폼 확장 전략이 핵심이었습니다. 현지 요구를 반영한 K808-PE와 함께, 동일한 동력 계통을 공유하는 K877 지휘소 차량 및 의무후송 차량 목업을 전시했습니다. 하나의 차체를 기반으로 지휘·후송 등 다양한 임무로 확장하는 구조를 제시하며, 운용과 정비 효율을 동시에 높이는 방향성을 보여줬습니다.
미래 전장 대응 기술로는 다목적 무인차량(UGV) ‘HR-셰르파’가 중심에 섰습니다. 감시·정찰, 물자 보급, 부상병 후송, 화력 지원 등 위험도가 높은 임무를 대신 수행하도록 설계한 플랫폼으로, RCWS와 드론 대응 장비 등 다양한 임무 장비를 탑재할 수 있습니다. 인휠 구동 시스템을 적용해 험지 기동성을 확보했으며, 실제 운용을 통해 성능을 검증 중이라는 점도 함께 소개됐습니다.
또한 지난 ADEX 2025에서 처음 공개된 수소연료전지 기반 무인 플랫폼 ‘블랙 베일’도 전시됐습니다. 저소음 사륜구동 구조로 은밀한 작전 수행이 가능하며,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해 탄소 배출이 없고 초기 가속 성능이 우수합니다. 탑재 장비에 따라 전투·물자 수송 등 다양한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확장성 또한 강조됐습니다.
이렇듯 이번 전시는 현대로템이 지상 전력을 개별 장비가 아닌 플랫폼 중심의 운용 체계로 바라보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전차 계열화, 차륜형 플랫폼 확장, 유·무인 복합 운용, 전동화 기술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며, 지상 전력의 진화 방향을 보다 선명하게 표현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안보 환경 변화 속에서 방산 기술은 국가 산업과 기술 경쟁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WDS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현대위아와 현대로템이 제시하는 지상 방어 솔루션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자리였습니다.
현대위아의 모빌리티 기반 화력 운용 체계와 드론 대응 솔루션, 현대로템의 계열화·무인화·전동화 전략은 모두 더 빠르고, 더 안전하며, 더 유연한 운용 환경을 지향합니다. 기술은 방어 체계의 형태를 바꾸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의 생존과 일상의 안전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WDS 2026에서 확인한 이 흐름은 한국 방산 기술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그리고 그 가능성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