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개발은 검증과 확인의 연속이다. 특히 승차감, 핸들링, 조향감 등 주행 성능을 조율하는 과정에는 끝이 없다. 고객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성능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주행 시험을 반복하며 최적의 설정을 찾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다양한 특성의 샘플을 만들어 차량에 장착하고 주행시험장(Proving Ground)을 달리며 주행 성능을 개발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리고 기다림의 반복이기도 하다. 설정 하나를 바꿀 때마다 목표한 특성이 반영된 부품을 만들고, 실제 차량에 장착해 성능을 확인하고 양산에 적용하기 위해 유관 부서와의 조율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통해 이런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고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일부 자동차 업체도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운용 경쟁력의 핵심은 바로 데이터다. 남양기술연구소의 주행시험장 노면을 1㎜ 단위로 스캔해 미세한 요철까지 고스란히 구현한 가상 공간에서, 개발 중인 데이터를 온전히 반영한 해석 모델링을 바탕으로 시뮬레이터를 운영하기 때문에 실제 주행에 가까운 측정값을 얻을 수 있다. 시간, 공간, 날씨 등의 제약에서 벗어나 언제든 주행 시험을 진행하고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는 2014년부터 가상환경 기반 버추얼 차량 검증 기술을 꾸준히 연구했다. 하지만 실제 차량 개발에 활용하려면, 단순한 시뮬레이터 수준을 넘어 실제 주행 환경에 최대한 근접한 완성도가 요구됐다. 코로나19 범유행은 시뮬레이터의 필요성에 다시금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각국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자동차 개발에 필요한 해외 시험과 현지 검증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남양기술연구소의 연구진은 전세계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벤치마킹 및 실증 연구를 거치면서 가상환경 기반 차량 검증 기술의 중요성을 재확인했고, 현대차그룹은 남양기술연구소에 독자적인 가상환경 검증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자체 기술을 활용해 시뮬레이터의 완성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예컨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다양한 기성품이 존재하지만 구성과 커스터마이징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따라서 연구개발 목적에 맞게 특수 주문 하드웨어를 구성하고 남양기술연구소의 개발 노하우가 담긴 자체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차량 개발 목적에 맞게 최적화했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상환경 도로의 재현 수준이다. 자동차에 작용하는 모든 힘은 노면과 타이어의 접촉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전 차종을 대상으로 차량 모델링 소프트웨어가 제 역할을 하려면 실제와 같은 도로를 구현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남양기술연구소의 주행시험장을 실제와 이질감 없이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서 1mm×1mm 단위의 고정밀 라이다(LiDAR)로 스캔해 노면 경사, 요철, 과속방지턱, 아스팔트의 거친 질감까지 모두 데이터로 수집했다.
문제는 수집된 고정밀 지도 도로 데이터의 용량이다. 통상적인 드라이빙 시뮬레이터가 cm 단위의 도로 데이터를 사용하는 반면, 현대차그룹은 현실적인 거동을 구현하기 위해 mm 단위의 데이터를 쓴다. mm 단위의 데이터 전체를 한번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하급수적인 용량이 필요하다. 이 방식으로는 정밀지도 한 장을 불러오는 데만 수십 분이 걸린다. 조금만 전진해도 프로그램이 멈출 정도로 부하가 심하기에 실시간 주행이 어렵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에 세계 최초로 ‘지형 서버(Terrain Server)’ 방식을 적용했다. 기존에는 도로 표면 위의 모든 데이터를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했다. 때문에 방대한 가상 공간 위에서 차량모델이 움직일 때 마다 타이어 모델링과 도로표면이 실시간으로 복잡한 수학적 계산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자동차가 주행하는 위치 주변의 도로 데이터만 실시간으로 주고 받는 방식을 고안해 냈다. 예컨대 시뮬레이터 속 자동차가 남양기술연구소 정문 앞 과속방지턱에 접근한다면 서버는 해당 지점의 데이터만 즉각 전달한다. 필요한 부분만 연속으로 불러오니 초고용량 데이터를 사용해도 지연이 없다. 이 모든 과정은 단 0.5초(최대 1초 이내) 만에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차량과 매우 유사하게 작동할 수 있게 된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공간에 들어서면 실제 주행 환경에 들어선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운전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270° 화각의 곡면 스크린 덕분이다. 상단에 배치된 9개의 프로젝터는 30°씩 영역을 분할해 4K 해상도의 3D 그래픽을 투사한다. 눈으로 지연현상을 느낄 수 없는 200Hz 이상의 초고프레임 화면은 사용자의 몰입을 돕기 위한 것이다. 또한 실제 차량과 동일하게 구성된 운전석은 실제 차량과 같은 조작 감각과 주행 환경을 제공한다.
현대차그룹의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운전자가 느끼는 미세한 감성 품질까지 반영해 최적화 튜닝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시험차량인 셈이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속 움직임을 통해 주행 성능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같은 움직임을 전달해야 한다. 모션 플랫폼은 상하, 좌우, 전후 움직임과 롤(Roll), 피치(Pitch), 요(Yaw) 등 주행 중 발생하는 물리적 거동을 섬세하게 재현하며, 노면에서 전달되는 최대 40Hz의 미세한 진동까지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사양은 모터스포츠의 최고봉인 F1 팀이 사용하는 고성능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에 견줄 만한 수준이다. 덕분에 소프트웨어 세팅에 따라 양산 모델 개발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서킷이라 일컫는 독일의 뉘르부르크링(Nürburgring)을 질주하는 레이스카 주행성능 개발 및 드라이버 훈련에도 활용할 수 있다. 현대차와 제네시스의 고성능 브랜드인 ‘N’과 ‘마그마’의 개발에도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사용하는 이유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차량 개발의 전 과정에서 활용된다. 시작차(Prototype)를 제작하기 전부터 가상 공간에서 운전하며 차량의 주행 성능 컨셉 설정과 기본 성능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설계 초기 단계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실물 차량을 만들었을 때도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가치는 여전하다. 예컨대 개발 중인 차량의 서스펜션 부품 일부를 교체할 때는 요구성능이 반영된 부품을 다시 설계 및 제작해야 하고, 제작된 부품을 장착하기 위해 리프트에 차를 올려 분해와 조립을 반복해야 한다. 다양한 조합의 세팅을 시험하려면 그만큼의 물리적인 시간과 비용 또한 많이 든다.
반면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부품의 특성을 실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니 개발자 입장에서 다양한 세팅도, 다소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부담 없이 제안하고 곧바로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 자유롭게 세팅을 바꾸며 최적의 값을 도출하고, 개발 중인 차량에 적용해 실제 환경에서의 검증을 이어 나가면 총합 성능 관점에서도 더욱 완성도 높은 차량 성능을 개발할 수 있다. 기후 조건도 마찬가지다. 마른 노면이나 젖은 노면의 주행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우천 상황을 기다릴 필요 없이 시뮬레이터 내부의 환경 설정을 바꾸면 바로 시험을 진행할 수 있다.
또한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실제 주행에서 일어나는 거동을 무한히 재현할 수 있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찾았다면 몇 번이고 현상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 데이터 확보와 개선 후 데이터 비교에도 용이하다. 승차감과 핸들링 성능 같이 상충성능에 대한 조율도 좋은 예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주행 감각을 구현하려면 노면의 거칠기에 따라 서스펜션으로 올라오는 진동과 충격을 완화하면서도 충분한 차량 거동제어가 이루어져야 한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해석 모델을 통한 성능 예측 뿐만 아니라, 성능개발자가 직접 주행평가를 통해 성능 튜닝을 실시하고 곧바로 데이터로 검증할 수 있다.
글로벌 성능 개발을 위한 해외 연구소와의 소통에서도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유용하게 활용된다. 해외 연구소와 데이터를 공유하고 주행성능평가 결과 및 피드백도 함께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로 환경과 기후 특성이 저마다 다른 만큼, 지역별 고객이 선호하는 주행 특성에도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같은 차량 설정이라고 해도 노면 상태가 다르면 승차감과 핸들링 특성이 달라진다. 따라서 전자제어서스펜션을 비롯해 조향 성능 개발 등 드라이버와 차량 간 피드백이 중요한 성능은 지역 사양 개발이 필수적이다.
단, 지역은 달라도 해당 모델이 추구하는 캐릭터와 주행 질감은 동일하게 느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국의 연구진이 밀접하게 소통하고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그 가교 역할을 한다. 일례로 글로벌 모델의 유럽 시장용 세팅을 다듬을 때는 유럽기술연구소에서 세팅한 차량과 유럽의 일반도로나 트랙 등 특성이 반영된 도로 데이터를 불러와 주행하면 된다. 동일한 가상 공간에서 주행과 분석을 진행하면 경험도 일치되기 마련이다. 공동의 목표와 기준이 명확하게 정립된 만큼 의견 교환도 쉬워진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도구이기도 하다. 자동차 개발에는 수많은 선택과 검증의 과정이 따른다. 과거에는 검증을 위해 시험부품을 만들고 해당 부품이 만들어져 시험차량에 장착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설계 데이터를 시뮬레이터에 입력해 효과를 미리 예측하고 실시간으로 튜닝 및 데이터 확인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선택에 따른 결과를 확인하기까지의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그만큼 더 다양한 개선안을 시험하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올해에만 12개 이상의 차종과 10개 이상의 시스템 단위 평가 계획이 잡혀 있다.
남양기술연구소의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더 넓은 세계를 담으며 진화하고 있다. 유럽기술연구소 등 해외의 연구소와 협업해 글로벌 핵심 노면 데이터를 구축 중이며, 뉘르부르크링 서킷의 데이터도 구축을 완료했다. 이는 현지에서 공동 시험을 진행하기 전부터 긴밀하게 소통하며 함께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자율주행 관련 협업의 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센서 신호체계와 통합 제어기를 활용한 자율주행 모션 검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AI 기술과의 결합도 주목할 부분이다. 가상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방대한 자료와 차량 동역학 모델을 이용하면 새로운 AI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와 피지컬 AI(Physical AI) 체계를 연결해 더욱 혁신적인 개발 환경도 구축할 수 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등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실제 차량 개발에 투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국내 완성차 업체는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이는 개발 과정의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더 많은 시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어떤 자동차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끝없는 시험과 검증・개선을 거쳐 완성된다. 그렇기에 현대차그룹의 자동차들은 가상부터 현실까지, 끝없이 이어진 도로를 달리며 완성도를 높인다. 더 많이 시험하고, 더 많이 검증・개선한 자동차일수록 완벽에 가까워진다.
가상 공간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적 혁신인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자동차의 개발 과정은 물론 고객 경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주행성능컨셉개발팀 정필영 책임연구원을 만나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개발 과정 및 향후 개선 계획에 대해 물어봤다.
Q.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개발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제작은 2025년 4월에 시작해 최종 완성하기까지 총 10개월 정도가 걸렸다. 하드웨어 선정과 공사 과정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어려웠지만 생각 외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반면 가장 어려운 부분은 소프트웨어 환경 구축이었다. 남양기술연구소에서 활용하는 차량동역학 해석 도구를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환경 변수에 맞게 재구성하고, 지연 없이 모션 플랫폼이 작동할 수 있게 구축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하지만 시연 시 실차 구현성이 뛰어나 공들인 보람을 느꼈다.
Q.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고객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돕는다. 또한, 기존 방식 대비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효과도 있다. 따라서 고객께 더욱 개선된, 신기술을 탑재한 차량을 빠르게 전달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Q. 향후 5년 안의 변화 및 개선안은 무엇이 있나?
현재 다양한 차종이 검증 예정에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차량이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검증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차량 개발은 동시 다발적이기에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사용할 일도 그만큼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추가 구축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더욱 정밀한 하드웨어 사양으로 개량해 적용할 계획도 있다.
Q. 외부에 가장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흔히 가상 환경 검증 플랫폼이라면 개발 비용 절감이나, 인력 절감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빠른 의사결정을 돕는 데 있다. 자동차 제조사의 경쟁력이란 더 좋은 자동차를 빠르게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자동차 개발에는 수많은 선택이 필요한데,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사용하면 개선에 따른 전후 성능 차이를 쉽고 빠르게 검증할 수 있다. 그만큼 의사결정의 속도가 빨라지고,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더욱 들일 수 있다.
사진. 조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