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배터리나 모터, 소프트웨어 같은 기술에 먼저 주목합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기본을 이루는 바탕은 여전히 차체입니다. 탑승 공간을 만들고, 무엇보다 충돌이 발생했을 때 탑승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체의 상당 부분을 이루는 소재가 바로 자동차 강판입니다. 자동차 강판은 자동차 산업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해 왔습니다. 더 강한 강판으로 안전성을 높이고, 같은 성능을 더 얇은 강판으로 구현해 차량의 무게를 줄여 연비와 전비(電費)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이죠. 최근에는 강도뿐 아니라 복잡한 차체 형태를 구현할 수 있는 성형성도 향상시켰습니다.
전동화는 자동차 강판에 또 다른 과제를 안겼습니다. 대용량 배터리 탑재로 늘어난 차량 무게를 억제하고, 차체 하부에 위치한 배터리를 충돌과 충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것이죠. 또 다른 과제도 있습니다. 강판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입니다. 자동차 강판의 경쟁이 ‘더 좋은 철을 만드는 것’을 넘어 ‘어떻게 더 좋은 철을 만들 것인가’로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제철 자동차EVI기술팀 신철균 책임연구원과 하이큐브기술개발팀 신승환 책임연구원의 이야기를 통해 자동차 강판이 맞이하고 있는 새로운 변화를 살펴봤습니다.
전동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자동차 강판에 요구되는 조건도 한층 복잡해졌습니다. 내연기관차에서 중요했던 충돌 안전성과 경량화는 물론, 전기차의 구조적 특성까지 고려한 소재 설계가 필요해진 것입니다. 신철균 책임연구원은 전기차 시대의 자동차 강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기차는 대용량 배터리 탑재로 차량 중량이 증가합니다. 차체 하부의 배터리를 충돌과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지요. 이에 따라 자동차 강판은 높은 강도와 충돌 안전성뿐 아니라 성형성, 접합성, 경량화 가능성을 균형 있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핵심은 어느 한 가지 성능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도를 높이면서도 복잡한 차체 부품으로 가공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부품과 안정적으로 결합하면서 차량의 무게도 줄여야 합니다. 여러 성능의 균형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가 전기차 시대 자동차 강판의 경쟁력이 된 것입니다.
자동차 강판은 오랫동안 더 높은 강도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소재가 초고장력강(Advanced High Strength Steel, AHSS)입니다. 문제는 철이 강해질수록 다루기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신철균 책임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자동차용 초고장력강은 차체 안전성과 경량화를 동시에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강도가 높아질수록 복잡한 부품으로 성형하기 어려워지는 한계가 있어 최근에는 높은 강도를 유지하면서 성형성과 충돌 특성을 함께 개선하는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3세대 초고장력강도 이러한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강한 철을 자동차 부품으로 만들기 위한 가공 기술도 함께 발전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핫스탬핑입니다. 고강도 강판은 상온에서 복잡한 형태로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핫스탬핑은 강판을 높은 온도로 가열해 부드럽게 만든 뒤 금형으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고, 금형 안에서 냉각해 다시 높은 강도를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고장력강과 핫스탬핑강은 센터 필러, 사이드실, 루프레일 등 충돌 시 탑승 공간의 변형을 억제하는 차체 구조 부품에 주로 사용됩니다. 각 부위가 담당하는 역할에 맞춰 강판의 강도와 두께를 다르게 설계하면 필요한 안전성은 확보하면서 불필요한 무게를 줄일 수 있습니다. 차량의 안전성과 효율 향상이라는 가치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죠.
자동차 강판의 변화는 소재의 성능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동차 산업에서 탄소 배출 규제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연기관 차량에서는 주행하면서 발생하는 배기가스가 중요한 규제 대상이었습니다. 전동화 차량이 확대되는 최근엔 주행 중 탄소 배출뿐 아니라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배터리와 부품, 철강과 알루미늄 같은 소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까지 함께 살펴봐야 자동차 한 대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보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철균 책임연구원은 이러한 변화를 자동차 강판의 새로운 경쟁력과 연결합니다. “자동차 산업의 탄소 배출을 관리하는 범위는 차량의 주행 단계에서 소재와 부품의 생산 단계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자동차 강판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완성차 회사의 공급망 배출량과 차량 전과정 평가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 제품과 동등한 품질과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생산 단계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강판인가’와 함께 ‘이 강판을 만드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됐는가’를 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해결책은 간단해 보입니다. 탄소 배출이 많은 재래식 고로 대신 철스크랩을 재활용하는 전기로의 사용을 늘리면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자동차용 고급 강판은 높은 강도만 확보하면 되는 제품이 아닙니다. 고강도와 성형성, 용접성, 표면 품질을 동시에 만족해야 하고, 어느 시점에 생산하더라도 품질의 차이가 매우 작아야 합니다.
신승환 책임연구원은 “스크랩에 포함된 구리, 주석 같은 잔류원소는 일반적인 산화 정련으로 제거하기 어려워 배합 단계부터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자동차용 고급 강판을 만들려면 이러한 성분을 처음부터 세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질소입니다. 전기로에서는 전기 아크를 이용해 철을 녹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기 중 질소가 쇳물에 들어가기 쉽습니다. 신승환 책임연구원은 “자동차 강판은 성형성 확보를 위해 탄소와 질소를 극저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질소 함량이 높아지면 연성 저하와 시효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동차용 고급강 생산에서는 중요한 관리 요소”라고 설명합니다.
*시효 현상: 시간이 지나면서 강판의 물성이 변해 연성과 성형성이 떨어지는 현상
현대제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료와 생산 공정을 함께 바꾸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 시작점 중 하나가 2022년 전기로를 활용한 자동차용 고급 판재 시험생산입니다. 당시 현대제철은 철스크랩에 직접환원철을 함께 배합하고, 전기로 정련 기술을 고도화해 1.0GPa*급 자동차용 고강도 판재를 시험생산했습니다. 직접환원철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해 만든 철원입니다. 철스크랩에 비해 잔류원소가 적고 성분도 비교적 균일합니다. 따라서 스크랩과 함께 사용하면 전기로 활용 비중을 높이면서 원료의 성분 편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GPa(기가파스칼): 재료가 외부의 힘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단위로, 가로와 세로가 각 1mm인 면적이 100kg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 단단함의 정도를 설명한다.
시험생산과 달리 실제 양산에서는 같은 품질의 자동차 강판을 대량으로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현대제철은 이후 원료 구성을 다시 확장했습니다. 스크랩과 직접환원철뿐 아니라 기존 고로에서 생산한 용선(고로에서 철광석을 녹여 만든 액상 상태의 쇳물)까지 함께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2023년부터 당진제철소에서 전기로 쇳물과 고로용선을 전로에서 혼합하는 복합 프로세스의 검증이 시작됐습니다.
신승환 책임연구원은 변화의 흐름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원료 측면에서는 스크랩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용선을 함께 배합해 잔류원소와 성분 편차 문제를 완화했습니다. 공정 측면에서는 전기로 정련 고도화에 더해 전로 복합 프로세스를 도입하면서 질소 제어와 청정도 확보라는 전기로의 근본적인 한계를 보완한 것이 핵심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로는 철광석을 환원해 쇳물을 만듭니다. 자동차 강판에 사용하기 좋은 안정적인 성분의 용선을 얻을 수 있지만, 철광석을 환원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반대로 전기로는 이미 만들어진 철스크랩을 다시 녹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철광석을 환원하는 초기 과정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고로용선의 사용량을 줄이고 탄소 배출을 낮추는 데 유리합니다. 대신 앞서 살펴본 잔류원소와 질소 등의 관리가 까다롭습니다.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는 두 방식을 결합합니다. 먼저 전기로에서 철스크랩을 녹여 쇳물을 만듭니다. 이 쇳물을 성분이 안정적인 고로용선과 함께 전로에 넣습니다. 전로에서는 두 쇳물을 합치고 탄소와 불순물을 제거하면서 원하는 자동차 강종에 맞게 성분을 조정합니다. 이후 2차 정련 과정에서 용강의 청정도와 성분을 더욱 세밀하게 관리합니다.
“쉽게 말하면 고로는 품질 안정성을, 전기로는 고로용선 사용량을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이후 전로와 2차 정련은 두 쇳물을 자동차 강판에 적합한 품질로 완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신승환 책임연구원의 말처럼 핵심은 어느 한쪽을 완전히 대체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전기로 쇳물의 활용을 늘려 고로용선 사용량과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기존 고로 기반 생산 공정의 품질 안정성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현재 양산 중인 현대제철의 ‘하이에코스틸(HyECOsteel)’은 자사 기존 고로재 제품 대비 생산 단계의 탄소 배출량을 약 2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한 강판입니다. 기존 강판의 성능을 유지하면서 생산 단계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하이에코스틸이 지향하는 방향입니다.
현재의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가 기존 생산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탄소 배출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방법이라면, 철광석 환원 과정에서 탄소계 원료의 사용을 더욱 줄이는 다음 단계의 기술도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수소환원제철’입니다. 철광석에서 철을 얻으려면 철광석에 결합된 산소를 떼어내야 합니다. 기존 고로에서 이 역할을 코크스와 같은 탄소계 환원제가 담당하는데, 이 과정에서 산소와 탄소가 결합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수소환원제철은 탄소 대신 수소를 이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합니다. 산소가 탄소 대신 수소와 만나기 때문에 주요 부산물 역시 이산화탄소가 아닌 물이 됩니다. 신승환 책임연구원은 “복합 프로세스가 기존 설비를 활용해 탄소 배출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현재의 상용 기술이라면, 수소환원제철은 환원제를 탄소에서 수소로 전환해 배출 구조 자체를 바꾸는 중장기 관점의 기술”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원리만 바꾼다고 바로 상용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대규모 수소 공급과 전력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수소를 저장하고 운송할 인프라뿐 아니라 제철소에는 철광석을 수소로 환원하는 직접환원 설비와 생산된 환원철을 녹일 대형 전기로가 필요합니다. 기존 고로 하나를 새로운 설비로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원료와 에너지, 물류를 포함한 제철소 생산 체계 전반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 강판의 품질을 확보하는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수소로 철을 만들더라도 최종적으로 자동차용 소재가 되려면 질소와 잔류원소, 비금속 개재물 등을 정밀하게 제어해야 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탄소 배출 감축 전략은 하나의 기술에 의존하기보다 여러 기술을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복합 프로세스를 통해 고로용선의 사용량을 줄이고, 전기로 기술을 고도화해 스크랩과 직접환원철 등 다양한 철원의 활용 범위를 확대하면서 장기적으로 수소환원제철을 준비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여러 기반 기술도 함께 움직입니다. 현대제철은 AI를 활용한 스크랩 관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스크랩의 등급과 성분 정보를 분석해 선별과 배합을 최적화하면 잔류원소의 편차를 더욱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탄소 배출을 직접 줄이는 기술은 아니지만, 전기로 쇳물의 자동차용 고급강 적용 범위를 넓히는 기술 기반입니다.
전기로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전기로는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만큼 제품 1톤을 생산할 때 필요한 전력량을 줄이면 생산 비용뿐 아니라 전력 사용에 따른 간접적인 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습니다.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활용·저장하는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도 보완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향후 수소환원제철과 탄소 배출량이 낮은 전력 사용이 확대되더라도 일부 잔여 배출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제철의 생산 기술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전기로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소환원제철까지 생산 방식의 변화를 단계적으로 이어갈 계획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동차 강판의 진화가 소재 자체의 성능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더 강하고 가벼운 강판을 개발하는 것에서 나아가, 강판 제조 과정까지 혁신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변화가 철강의 역할과 기술을 다시 정의하고 있는 셈입니다.
초고장력강과 핫스탬핑으로 자동차의 안전과 경량화를 뒷받침해온 현대제철은 이제 생산 방식의 변화라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새로운 세대로 진화할 때 그 기반이 되는 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소재와 공정을 함께 혁신하며 그 답을 찾아가는 현대제철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사진. 이태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