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 앞에 공이 놓인다. 아틀라스가 왼발로 슛하는 척 페인트 모션을 구사하고, 곧바로 오른발을 디딤발 뒤로 교차해 공을 때린다. 페인트와 크로스 스텝, 도약과 착지, 그리고 정확한 임팩트가 1초 남짓한 시간에 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실제 축구 선수도 경기 중 좀처럼 구사하기 어려운 고난도 기술, ‘고스트 라보나 킥(Ghost Rabona Kick)’이다.
디딤발 뒤로 반대쪽 다리를 꼬아 차는 라보나 킥은 축구장 위에서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 구조를 모방한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라보나 킥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중력과 관성, 그리고 불규칙한 마찰력이 지배하는 물리 세계에서 온몸의 축을 비틀며 균형을 잡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틀라스가 구현한 기술은 라보나 킥보다 어려운, 수비수를 속이는 페인트 동작을 가미한 고난도의 고스트 라보나 킥이다. 사람에게도 까다로운 이 동작을, 아틀라스는 대체 어떻게 익혔을까.
School of Football
현대자동차가 공개한 ‘스쿨 오브 풋볼(School of Football)’ 메이킹 필름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아틀라스가 어떻게 축구를 배우고, 나아가 ‘고스트 라보나 킥’ 같은 복합 동작까지 구현할 수 있었는지 보여주는 영상이다. 이 프로젝트는 FIFA 월드컵 2026™ 캠페인 ‘미래는 지금 여기서부터(Next Starts Now)’의 일환으로, 오는 6월 11일 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개막하는 월드컵을 앞두고 전 세계가 열광하는 축구를 매개로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기술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다. 아틀라스는 어떻게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겼던 정교한 움직임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었을까.
Next Starts Now
대부분의 스포츠는 이동과 조작을 분리한다. 달리기는 달리기대로, 손으로 무언가를 다루는 일은 그것대로 따로 훈련하면 된다. 그러나 축구는 다르다. 축구는 로봇 공학 관점에서 가혹할 정도로 복잡한 물리적 환경에 가깝다. 균형을 잡고 달리는 동시에, 발끝으로 공을 정밀하게 제어해야 한다. 이동과 조작을 한 몸에서, 같은 순간에 해내야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공의 위치를 포착하는 실시간 인지력, 지면과의 마찰력을 계산해 디딤발을 지탱하는 균형 감각, 그리고 강력한 임팩트를 순간적으로 전달하는 협응력이 필요하다.
바로 이 점이 휴머노이드 로봇에게는 가장 도전적인 영역이다. 아울러 로봇이 현실에서 마주할 과제와 가장 닮은 환경이기도 하다. 즉, 축구장이라는 가상의 시험대는 로봇이 현실 세계의 변화무쌍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거쳐야 할 가장 난도 높은 훈련소인 셈이다.
아틀라스의 훈련을 위해 축구 프리스타일러가 모션 캡처 슈트를 입고 시연 중이다. 출처: 보스턴다이나믹스(https://bostondynamics.com/)
아틀라스의 축구 학습은 실제 선수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연구진은 광학식 ‘모션 캡처(Motion Capture)’ 시스템으로 사람의 발놀림, 체중 이동, 관절의 궤적을 고해상도 운동 데이터로 수집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선수들의 데이터만 학습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이끈 보스턴다이나믹스 연구진은 직접 모션 캡처 슈트를 입고 기본기 동작을, 축구 프리스타일러는 고난도 동작을 시연했다. 영상 속 아틀라스의 여러 움직임은, 사람들이 먼저 몸으로 보여준 동작을 로봇이 따라 한 결과다. 사람이 곧 로봇의 교재가 된 셈이다.
아틀라스는 정교한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리타게팅 과정을 거쳐 사람의 동작을 학습했다. 출처: 보스턴다이나믹스(https://bostondynamics.com/)
문제는 그 다음이다. 중요한 것은 겉모습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동작의 리듬과 의도, 그리고 힘이 실리는 순서를 읽어내는 일이다. 사람과 로봇은 겉모습이 비슷해도 관절 구조와 가동 범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람의 동작을 그대로 복사해 넣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연구진은 ‘리타게팅(Retargeting)’이라는 변환 과정을 거쳤다. 인간이 킥을 할 때 몸의 중심을 어떻게 이동하는지, 디딤발에 가해지는 하중은 얼마인지 정밀하게 해석해 아틀라스의 하드웨어 구조에 맞게 최적의 형태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동작을 단순히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의 몸에 맞게 움직임의 원리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동작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해서 곧바로 로봇이 그 움직임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로봇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움직임을 자기 몸으로 실현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어떤 순서로 모터를 제어해야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지, 힘을 언제 어떻게 실어야 하는지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해 반복적으로 익힌다.
아틀라스는 수천 회의 시뮬레이션 학습을 통해 사람의 1년치 연습량을 24시간 만에 학습했다. 출처: 보스턴다이나믹스(https://bostondynamics.com/)
이 훈련은 실제 잔디가 아니라 시뮬레이션 안에서 이뤄진다. 클라우드 GPU 환경에서 수천 개의 시뮬레이션이 동시에 돌아가고, 그 안에서 아틀라스는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도 하며, 킥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인상적이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아틀라스가 사람으로 치면 약 1년에 해당하는 압도적인 연습량을, 단 24시간 만에 소화한다고 설명한다. 이렇듯 데이터와 연산 능력이 결합된 시뮬레이션 환경 덕분에 로봇의 학습 속도는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흥미로운 지점은 시뮬레이션에서 완성한 동작을 실제 아틀라스에 적용하는 순간이다. 보스턴다이나믹스에 따르면 아틀라스가 익힌 동작은 대부분 첫 시도에서 안정적으로 구현됐다. 이는 단순히 동작을 저장하고 재생하는 방식이 아니라, 물리 법칙에 대한 이해 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아틀라스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몸이 가진 무게와 관성, 모터의 출력, 지면과의 상호작용을 반영해 움직인다.
아틀라스는 현실 세계의 테스트에서 얻은 데이터를 다시 시뮬레이션에서 학습하는 과정을 반복해 행동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출처: 보스턴다이나믹스(https://bostondynamics.com/)
물론 현실 세계는 시뮬레이션보다 복잡하다. 바닥의 마찰, 공의 위치 오차, 미세한 하드웨어 편차 같은 변수도 존재한다. 그래서 연구진은 실제 테스트에서 얻은 데이터를 다시 학습 과정에 반영하며 움직임을 다듬는다. 아틀라스의 축구 기술은 한 번의 성공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점점 정교해지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School of Football
라보나 킥은 겉보기엔 단순한 슈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복합적인 동작이다. 몸의 축을 비틀어 균형을 유지한 채, 짧은 순간에 강한 힘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영상의 하이라이트인 ‘고스트 라보나 킥’은 훨씬 까다롭다. 먼저 한쪽 다리로 슈팅하는 척하며 상대를 속이는 페인트 동작이 들어가고, 이어 반대쪽 다리를 뒤로 교차해 공을 정확히 차야 한다. 이때 로봇은 몸의 축이 비틀린 비대칭 자세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고, 설득력 있는 페인트를 위한 빠른 속도, 지면에서 완전히 떠올랐다가 다시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힘과 민첩성이 한 동작 안에 모두 담겨야 한다.
아틀라스는 전신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합적으로 제어하는 전신 제어 기술을 통해 정교한 동작이 필요한 고스트 라보나 킥을 구사했다. 출처: 보스턴다이나믹스(https://bostondynamics.com/)
이 복합 동작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바로 ‘전신 제어(Whole-body Control)’ 기술이다. 발 하나의 움직임을 위해 몸통과 팔, 중심 이동까지 전신의 모든 관절이 하나의 시스템처럼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통합 제어 방식이다. 공을 세게 차는 순간에도 넘어지지 않고, 착지 후 다음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려면 전신의 모든 관절이 긴밀하게 협응해야 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축구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몸 전체의 통합된 움직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Atlas, can you bring me a drink?
이번 프로젝트가 많은 관심을 받은 배경에는 아틀라스의 정교한 움직임이 단순히 기술 시연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산업 현장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온몸의 관절을 하나로 조율하는 전신 제어 능력은 아틀라스가 작업 현장에서 물체를 다루는 데 필요한 능력과 본질적으로 같다. 균형을 유지하며 이동하는 동시에 무언가를 정밀하게 조작해야 하는 상황은 물류와 제조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최근 아틀라스가 23kg에 달하는 냉장고를 안정적으로 들어 올려 탁자 위에 정확히 내려놓는 장면이 공개된 바 있다. 이 역시 정교한 전신 제어 능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모습으로, 산업 현장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축구를 통해 아틀라스가 익히는 것은 한 번의 화려한 킥이 아니다. 균형과 타이밍, 힘의 배분,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감각이다. 결국 축구는 아틀라스의 상용화를 향한 하나의 학습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과 같은 정교한 움직임을 배우고, 반복 동작뿐만 아니라 새로운 환경마다 스스로 배워 적응하는 과정인 셈이다.
이 점에서 ‘스쿨 오브 풋볼’은 캠페인 영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의 동작을 데이터로 바꾸고, 그것을 로봇의 몸에 맞게 변환한 뒤, 수많은 시뮬레이션과 실제 테스트를 거쳐 하나의 움직임으로 완성하는 로보틱스의 현재를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아틀라스는 끊임없이 학습하며 진화하고 있다. 아틀라스가 고스트 라보나 킥을 성공한 장면에는 이미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로보틱스의 미래가 선명하게 투영돼 있다. 이는 현대차 월드컵 캠페인의 메시지처럼 ‘미래는 지금 여기서부터’ 우리 앞에 현실로 펼쳐지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