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수많은 제어기와 소프트웨어의 연결로 작동한다. 개별 부품이 정상이어도 서로 연결된 순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 AMS(Advanced Mobility Solution)동에 위치한 NOVA Lab(Next-generation Open Validation & Automation Laboratory, 차세대 개방형 검증 및 자동화 연구 시험실, 이하 노바 랩)은 와이어카(Wire-car)를 활용해 이러한 문제를 검증하는 오픈 플랫폼이다.
노바 랩에는 자동차가 없다. 대신 ‘와이어카(Wire-car)’가 있다. 와이어카는 차량의 제어기와 전장 부품, 와이어링 하네스를 실제 차량과 동일하게 연결해 전기·전자 시스템 전체를 구현한 검증 플랫폼이다. 이는 개발 효율성과 기능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부분이다. 시작차(Prototype) 제작 이후 문제를 발견하면 개선 일정이 늦어질 뿐 아니라, 이미 조립이 완료된 차량에서 제어기를 탈착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수정하는 작업도 쉽지 않다. 따라서 개발 중인 모델에 적용될 제어기, 배선, 통신 장비 등을 연결해 시스템과 통신을 확인하며 실제 차량에서의 문제점 해결에 걸리는 시간을 앞당기고, 보다 완성도 높은 차량을 제작하는데 기여한다.
와이어카는 개발 초기 단계에서 구축해 장기간 활용한다. 차량 전체 시스템이 실물 하드웨어로 연결되는 최초의 검증 단계이기 때문이다. 구축 과정 역시 쉽지 않다. 대형 차종의 경우 연결되는 제어기와 전장 부품은 300~500개 수준이며 와이어링 커넥터도 약 500개에 달한다. 숙련된 인원을 투입해도 구축에만 일주일이 걸린다.
과거에도 가상 환경의 시뮬레이터와 실제 차량의 전자제어장치(ECU)를 연결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성능 및 안전성을 검증하는 HIL(Hardware-in-the-Loop)이나 테스트벤치를 활용한 선행 검증이 있었다. 하지만 차량에 탑재되는 제어기가 급격히 늘어나고 소프트웨어 복잡성이 높아지면서 소프트웨어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시간과 역량을 투입해야 했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2019년부터 차량 제작 이전 단계에서 와이어링과 제어기만 연결해 기능·통신·진단을 검증하는 와이어카 체계를 운영했고, 이를 더욱 확장해 노바 랩을 만들었다.
노바 랩 구축 전에는 종합품질확보동에서 7개의 테스트벤치로 와이어카를 운영했다. 반면 노바 랩은 14개의 테스트벤치로 와이어카를 운영한다. 공간 규모는 기존 900㎡에서 2,700㎡로 3배나 늘었다. 또한 다양한 신규 장비를 도입해 기존 테스트벤치 환경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차에 가까운 수준의 검증 범위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신차 개발 전 과정에 걸쳐 충분하고 다양한 검증이 가능해졌다.
신차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에서는 다양한 문제가 발견된다. 회로 문제, 통신 장애, 시스템별 로직 충돌 및 암전류 발생 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기에 검증 가능한 상태까지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노하우와 문제 해결을 위한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개발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를 빠르게 찾아내고 개선된 소프트웨어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 와이어카 검증의 이점이다.
과거 자동차의 품질은 기계적인 완성도에 중점을 뒀다. 정교한 설계와 조립 품질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동차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 전자·소프트웨어 구조의 안정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동화 기술의 확대,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OTA(Over-the-Air) 업데이트, 커넥티드 서비스 등 다양한 기능이 보편화되면서 차량 내부의 전자·소프트웨어 구조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시스템별로 각각의 제어기와 소프트웨어가 작동한다. 간단한 원격 시동이라고 해도 스마트키, 보안 시스템, 통신 모듈, 전원 관리 시스템, 공조 제어기 등이 동시에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해당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도 다양하다. 개별 제어기가 정상이어도 서로 연결되면 예상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특정 조건에서 통신이 끊기거나 기능 충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고객의 불편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꼼꼼한 확인과 보완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를 검증하긴 쉽지 않다. SDV 체제로 전환되면서 차량의 통신 기반과 도메인 아키텍처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이른 시점에서,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검증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출발한 것이 바로 노바 랩이다.
노바 랩의 목표는 와이어카 검증뿐 아니라, 제어기 유관부문에 테스트 플랫폼을 제공하여 품질 검증을 조기에 활성화 하는 것이다. 다만 와이어카는 뼈대가 없는 자동차다. 따라서 차량 속도와 연계되는 ADAS 기능의 검증이 어렵다. 노바 랩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동식 소형 다이나모미터를 도입했다. 구동축에 연결된 다이나모미터를 통해 가속, 감속 등 주행 상황을 모사할 수 있으며 최대 약 80km/h 수준의 주행 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
ADAS 시뮬레이터 기술도 사용한다. HIL 장비를 이용해 차량의 속도와 거동, 통신 상태를 실시간으로 계산한 뒤 카메라와 RTS(Radar Target Simulator)에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전방 카메라를 위해서는 모니터로 실제 도로를 모사한 가상의 도로 영상을 띄우고, 레이더를 위해서는 가상의 차량 신호를 만드는 장비를 사용한다. 이로써 와이어카가 실제 도로를 주행하는 것과 같은 환경에서 센서와 제어 로직을 검증하는 것이다.
실차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전압 조건도 확인 대상 중 하나다. 독자 개발한 통합전원공급장치는 정상 전압은 물론 저전압·과전압 등 사용자 조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가혹 조건도 모사해 특정 전압 조건에서만 발생하는 간헐적 오류를 찾아낼 수 있다. 차량용 리튬 배터리와 고전압 시스템을 다루는 만큼, 온도와 전압 이상 감지 시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하는 안전 로직도 적용돼 있을뿐 아니라, SDV의 48V 시스템처럼 제어기별로 요구 전압과 전류가 다르더라도 능동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신차 개발 과정에서 노바 랩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신차 개발 중 와이어카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발견되곤 한다. 이는 CAN·이더넷 로그와 함께 시스템에 등록되며 이후 분석, 개발, 검증 과정을 거쳐 해결된다. 한편 새로운 시스템과 기술을 대거 적용한 모델의 경우 2배 이상의 개선 항목을 찾아내기도 한다. 일례로 특정 모델 개발 과정에서는 시동이 꺼진 이후 공조 제어기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는 사례를 찾아 개선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노바 랩은 AI와 머신러닝 기반 검증 환경도 준비하고 있다. 상시 데이터 로깅 시스템을 통해 방대한 차량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상 상태와 비정상 상태를 학습시켜 신규 차량 검증 과정에서 이상 징후를 자동으로 식별하는 것이 목표다.
노바 랩은 특정 부서만 사용하는 전용 시설이 아니다. 그룹사와 협력사 모두 사전 예약을 통해 활용할 수 있는 오픈형 플랫폼이다. 공동 검증을 통해 개발 초기 단계에서 개별 제어기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시스템 레벨 검증은 물론, 여러 제어기 간 연계 기능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OTA 품질 검증 부문에도 와이어카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모든 제어기가 개방된 상태로 구성돼 있어 ROM(소프트웨어가 저장된 메모리) 변경과 업데이트 검증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바 랩은 연구소 전체의 품질 검증에도 활용되고 있다.
노바 랩은 미래 차량을 위한 검증 환경도 구축하고 있다. SDV 시대에 맞춰 차량의 전원은 12V에서 48V로 확장 중이다. 통신도 CAN(Controller Area Network) 중심에서 고속 이더넷 기반으로 바뀌고 있다. 제어기가 통합 제어기 중심의 Zonal 아키텍처로 전환됨에 따라 검증 방법, 검증 장비 등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에 맞춰 노바 랩은 이더넷 통신 환경과 48V 충전 환경을 구축했으며, 데이터 변환 툴과 패킷 분석 프로그램도 자체 개발했다.
로보택시 검증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 운전자가 없는 상황을 전제로 하는 로보택시는 제동·조향과 같은 핵심 시스템에 이중화(Redundancy) 구조를 적용한다. 하나의 제어기가 고장 나더라도 안전을 위해 다른 제어기가 즉시 기능을 이어받는 방식이다. 노바 랩은 이러한 이중화 구조와 강화된 사이버 보안 체계를 검증하는 플랫폼 역할도 수행한다.
지금의 자동차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제품이다. OTA 업데이트를 통해 기존 기능을 개선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며 진화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검증 과정이 존재한다. 노바 랩은 제어기와 소프트웨어를 면밀히 검증해 잠재적인 결함을 찾아내고, 고객에게 전달되기 전에 제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고객이 경험해야 하는 것은 오류가 아니라 지속적인 기능 개선과 편리한 차량에서 비롯되는 높은 만족감이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시대를 맞아 노바 랩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한 검증 시설을 넘어 전기·전자 시스템의 결함을 선제적으로 찾아내는 오픈 플랫폼으로서 노바 랩이 그리는 향후 개선 계획을 파이롯트전장제어개발팀 김상연 파트장에게 물어봤다.
Q. 노바 랩은 고객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SDV 체계 전환의 목적은 고객의 편리함에 있다. 일례로 OTA를 통한 실시간 업데이트는 자동차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좋아지는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차량 소프트웨어의 문제 없는 적용이 필수적이며 수많은 사전검증이 필요하다. 노바 랩은 고객이 품질 문제로 인한 불편함이 아닌, 발전하는 자동차의 편리함만 느낄 수 있도록 차량 소프트웨어의 완성도를 조기에 끌어올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Q. 노바 랩 수준의 검증 인프라를 갖춘 완성차 업체가 국내외에 얼마나 되나?
이런 정보는 공개되어 있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실제 제어기 기반 전체 차량 시스템을 구현한 사례는 적은 것으로 안다. 노바 랩에서는 자체 개발한 구동부하장치와 신규 도입한 소형 다이나모미터를 활용하며, 전기차의 경우 전동화 제어기까지 모두 구비해 중속까지의 주행조건도 구현했다. 전동화/인포/전자제어 등 시스템별로 나눠진 사전검증 환경은 있으나 차량 전체 시스템을 실물 제어기로 모두 구현한 사례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Q. 향후 5년 안의 변화 및 개선안은 무엇이 있나?
신규장비와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실차 수준 커버리지 확보, 다양한 개발툴과 AI를 활용한 검증 자동화, 리콜/클레임 등 양산단계 주요 문제점을 반영한 핵심 클레임 검증 및 연계 테스트케이스의 개발 등이 있다. 실차 수준의 검증 케이스를 많이 만들어 자동화하여 양산 단계에 발생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사전에 발췌하고 개선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Q. 외부에 가장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노바 랩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제어기 구조, SDV 체계로의 전환에 대응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노바 랩은 와이어카를 상시 시험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이다. 협력사를 포함한 제어기 유관 부문은 누구나 노바 랩에서 와이어카를 활용할 수 있다. 모두와 협업해 품질 검증을 조기에 활성화함으로써 고객이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진. 조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