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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밀도, 이동의 속도: 370km/h

현대로템이 시속 370km급 고속철도 핵심기술 연구성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날 발표회는 KTX-1에서 KTX-청룡까지 한국형 고속열차 기술이 축적된 과정도 함께 볼 수 있는 자리였는데요, 현대로템의 고속열차를 통해 한국형 고속열차 기술의 발전 과정을 알아봅니다.

차세대 고속철도의 시작점, EMU-370

EMU-370


작년 12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에서 ‘시속 370km급 고속철도 차량 핵심기술 연구성과 발표회’가 열렸습니다. 차세대 고속열차 개발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음을 알리는 이 발표회의 주인공은 현대로템이 개발한 새로운 고속열차 EMU-370. 상업 운행속도 기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이 열차는 예정대로라면 2031년부터 한반도를 달리게 됩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주관하고 현대로템이 공동연구기관으로 참여한 차세대 고속열차 개발 사업은 2022년 4월 시작됐습니다. KTX-청룡(EMU-320, 상업 운행속도 시속 320km)의 제작 기술을 기반으로, 더 빠르고 안전하며 안락하고 조용한 고속열차를 만들기 위해 추진됐죠.


현대로템의 첫 번째 과제는 상업 운행속도를 시속 370km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견인전동기의 연속 정격을 기존 380kW에서 560kW로 크게 상향한 고속전동기를 개발했습니다. KTX-청룡 대비 출력이 약 47.4%나 증가한 것이죠.

EMU-370, KTX-청룡 제원 비교

손실은 줄이고 열을 다스리다

출력 증가의 비밀은 바로 설계에 있습니다. 연구진은 저속·기동, 정격 속도, 과부하, 고속 영역 등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각각 어떻게 달라지는지 정밀 분석해 실제 주행 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주요 출력 구간에서 손실이 낮아지도록 설계했습니다. 또한 발열량을 사전에 정밀하게 예측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냉각 유로를 설계했죠.

출력 약 47.4% 증가, 출력밀도 약 24.6% 증가.

고속열차는 고속 주행 시 발생하는 전동기의 급격한 열 변화를 견뎌내기 위해 절연 기술도 중요합니다. EMU-370은 국제 규격에 따라 주위 온도 대비 최대 220℃의 고온에서도 절연 성능을 유지하는 고내열성 절연 시스템인 ‘Class 220 내열 등급’을 만족하는 성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극한의 주행 환경에서도 전동기가 성능 저하 없이 지속적으로 동력을 공급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공기 저항을 줄이는 완전 매립형 구조의 힘

현대로템은 EMU-370의 공기저항 저감을 위해 전두부 형상, 옥상 돌출부 개선, 대차커버 적용 등 차량 형상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속열차는 빠른 것도 중요하지만 승객이 얼마나 조용하고 안락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하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빠르면서 조용하며 안락한 고속열차를 실현하기 위해 현대로템 연구진은 ‘공력 설계’에 집중했습니다. 고속열차는 시속 350km를 넘으면 주행저항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진동과 소음도 훨씬 커지죠. 연구진은 진동과 소음을 다스릴 첫 번째 해답을 완전 매립형 구조에서 찾았습니다.

공력 개선 전두부 형상 디자인.


고속열차 지붕에는 주행에 필요한 주요 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공조장치, 통신·신호 관련 장치 등이 지붕에 올라가 있는데, 이를 매립형으로 설계해 공기저항 계수를 낮춘 것입니다. 매립형이 아닌 돌출형으로 설치하면 제작과 유지보수는 훨씬 수월합니다. 하지만 연구진은 에너지 효율과 정숙성을 위해 ‘완전 매립형 구조’를 고집했습니다. 여기에 앞부분을 10m 이상 길게 설계해 매끄럽게 다듬고, 하부 대차에 커버를 적용했죠. 그 결과 공기저항 계수는 KTX-청룡(0.868Cd) 대비 약 12.3%나 낮은 0.761Cd로 맞출 수 있었습니다.

소음의 길을 추적하다, 정숙함을 설계하다

공력소음 또한 속도가 높아질수록 급격하게 치솟으며 커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현대로템 연구진은 이런 공력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철도 분야에서는 생소한 분석 기법과 구조를 도입했습니다. 주로 고성능 자동차 개발에 쓰이는 ‘전달경로분석(TPA, Transfer Path Analysis)’ 기법을 고속열차에 적용한 것입니다. 차체 1량을 공중에 매단 상태에서 30~40개의 3방향 센서를 부착해 100채널 이상의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했죠. 이를 통해 소음이 어떤 경로를 타고 객실로 유입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소음의 경로를 파악한 연구진은 이를 단속하기 위해 알루미늄 압출 구조 위에 점탄성 소재와 메탈 플레이트를 겹겹이 쌓은 ‘샌드위치 구조’를 차량 전체에 적용했습니다. 여기에 제진매트를 더해 소음과 진동을 다스린 것인데요. 100번이 넘는 반복 실험을 통해 소재의 두께와 조합을 미세하게 조정하며, ‘차음’과 ‘제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EMU-370의 실내소음 예측 결과는 시속 320km에서 68dB, 시속 370km에서 73dB로 기존 고속열차 대비 2dB 이상 낮습니다.

기존 고속차량 대비 실내소음 2dB 저감 달성.

다목적 최적화로 구현한 주행 안정성과 승차감

주행안정성과 승차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고속열차가 시속 370km를 안정적으로 달리려면 서스펜션이 단단해야 하지만, 승객이 편안하려면 부드러움도 필요합니다. ‘단단함(안정성)’과 ‘부드러움(승차감)’의 시소게임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연구진은 ‘다목적 최적화(Multi-objective Optimization)’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고속 주행 시 대차가 흔들리는 불안정함은 단단하게 억제하면서도, 차체를 타고 들어오는 미세한 고주파 진동은 부드럽게 걸러내는 특성값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EMU-370의 승차감 지수(Nmv)는 1.87로, 유럽 기술표준(EN)에서 정한 최고 수준입니다.

현대로템은 EMU-370의 임계 속도를 기존 KTX-청룡 대비 시속 20km 향상시킨 시속 470km까지 확보했습니다. 또한 철도 차량의 주행성과 바퀴-레일 간 접촉 역할을 연구하기 위한 시험 장치인 롤러 리그(Roller Rig)를 통해 시속 400km의 주행 조건에서도 이상 진동이 발생하지 않는 안정성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EMU-370이 극한의 주행환경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성능과 안전성을 갖추었다는 것을 입증한 결과입니다.

이제 EMU-370은 시속 370km급 고속열차를 넘어 대한민국이 시속 400km급 고속열차 시대로 나아가는 초석이 되고 있습니다. 2004년 4월, 첫 고속열차 운행 이후 한국형 고속철 기술의 성장을 이끌어온 현대로템은 다시 한번 새로운 도약의 문 앞에 서 있습니다. 더 빠르고 더 안전하며, 더 조용한 미래를 위해 축적돼온 이 기술과 경험은 한국 철도의 내일에 대한 기대과 희망을 함께 키워가고 있습니다.

동력집중식과 동력분산식 열차

동력집중식은 동력기관이 열차의 앞뒤에 집중된 차량이고, 동력분산식은 각 차량에 동력기관이 분산된 차량을 말합니다. 동력집중식 열차는 앞뒤에 동력차를 배치하기 때문에 편성이 유연하고, 운전 효율이 높습니다. 반면 동력분산식 열차는 각 객차에 동력기관이 있기 때문에 가속과 감속 성능이 뛰어납니다. 모든 차량에 승객을 태울 수 있어 수송 능력과 운영 효율도 높죠. 대신 소음과 진동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현대로템은 이 단점을 줄이기 위해 개발 단계부터 소음과 진동의 한계 수준을 정하고, 다양한 시험과 시뮬레이션을 진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차체 알루미늄 압출재 내부에 흡음재를 충전하고, 객실 바닥은 플로팅플로어(Floating-Floor, 바닥 패널이 바닥에서 떠 있는 형태) 기술을 적용해 소음과 진동 전달을 최소화했죠. 그 결과 동력분산식을 채용한 KTX-이음의 실내 소음 수준은 시속 260km에서 70dBA 이하로, 동력집중식 열차인 KTX-산천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조용하고 편안한 승차감을 자랑합니다. 참고로 현대로템이 새롭게 공개한 차세대 고속열차 EMU-370의 실내 소음 예측 결과는 시속 320km에서 68dB입니다. 

대한민국 고속열차 히스토리

KTX-1  
한국 최초의 고속열차 

1992년 경부고속철도 건설에 착수한 한국 정부는 1994년 프랑스 알스톰(Alstom)과 계약을 맺고,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테제베(TGV, Train à Grande Vitesse) 기반의 KTX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핵심 기술을 이전하지 않은 데다 프랑스 기술이 한국 상황에 맞지 않아 대대적인 개량이 필요했습니다. 현대로템이 한국 지형과 환경에 맞게 개량한 KTX-1은 2004년 4월 1일,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1세대 KTX는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412km 구간을 2시간 40분에 주파하며, 한국 철도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HSR-350X
한국 최초의 독자개발 고속 시험열차

HSR-350X는 TGV의 기술을 국산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형 고속철도 차량을 개발하기 위해 제작됐습니다. 1996년 개발에 착수한 현대로템은 2002년 개발을 완료하고 2007년까지 5년 동안 20만 km를 운행하며 안전성을 확보했죠. 2004년 12월에는 최고 시험속도 시속 352.4km를 기록하며 기술력도 입증했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 프랑스,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고속철도 독자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됐습니다. 


KTX-산천
한국 최초의 독자 개발 고속열차 

현대로템이 제작한 2세대 고속열차 KTX-산천은 HSR-350X에서 국산화하거나 검증된 기술을 대거 도입해 상용화한 모델입니다. 대부분의 주요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해 독자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시켰죠. 최고속도는 시속 305km이며, 기존 KTX처럼 양쪽 끝단의 기관차가 객차를 견인하는 동력집중식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2010년 3월, 용산발 광주행 501열차로 첫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HEMU-430X
한국 최초의 동력분산식 고속 시험열차

2007년 현대로템이 개발을 시작한 HEMU-430X는 KTX-1, KTX-산천과 달리 동력분산식 열차로 설계됐습니다. 동력분산식 열차는 각 객차의 아래쪽에 동력기관을 분산 배치해 수송능력과 가속, 감속 성능이 동력집중식 열차보다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신 무게가 무거워진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량 알루미늄 압출재를 적용했습니다. HEMU-430X는 2013년 3월, 최고 시험속도 시속 421.4km 를 기록했는데요. 이로써 한국은 프랑스, 중국, 일본에 이어 시속 400km 이상의 고속철도를 개발한 네 번째 국가가 되었습니다. 


KTX-이음(EMU-260)
한국 최초의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KTX-이음은 현대로템이 HEMU-430X의 설계와 제작 기술을 토대로 완성한 한국 최초의 동력분산식 고속열차입니다. 고속주행 시 차량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 차체와 대차간 양방향 요 댐퍼(Yaw Damper, 좌우 진동인 요잉(Yawing) 현상을 억제해 주행 안정성을 높이는 장치)를 적용하고, 특수방진장치와 흡음재를 사용해 차체 소음을 최소화했죠. 공기역학적 설계와 차체 경량화로 기존 KTX보다 에너지 효율도 개선했습니다. 2021년 중앙선을 시작으로 강릉선, 경강선 등 선로 최고속도가 시속 250km 이하인 곳에서 운행 중입니다.


KTX-청룡(EMU-320)
시속 320km급 차세대 고속열차

2024년 5월, 현대로템의 고속열차 KTX-청룡이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운행 최고속도 시속 320km, 설계 최고속도 시속 352km의 KTX-청룡은 HEMU-430X를 기반으로 개발한 또 하나의 고속열차입니다. KTX-이음과 마찬가지로 동력분산식 설계를 통해 가감속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높인 것이 특징입니다. 주행 중 발생하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객실과 운전실에 흡음재와 차음판을 더해 실내가 한층 조용하고 안락하죠. 현재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2004년 4월, 첫 운행을 시작한 이래 대한민국 고속열차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현대로템이 있습니다. EMU-370 프로젝트의 성공은 현대로템의 철도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음을 증명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안락하며 안전한 고속열차를 향해, 현대로템은 지금도 370km/h를 너머 달리고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사진: 현대로템 TECH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