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afer Way Home’ 영상은 소방관의 언어와 시선으로 화재 현장의 긴장과 무게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영상 내 내레이션을 맡은 임팔순 구조대장의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그곳”이라는 한마디는 담담한 톤으로 오랜 여운을 남기고, 화면 속 기록들은 재난 대응의 목적이 결국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임을 다시 깨닫게 하죠. 시민의 안전과 소방관의 안전이 맞닿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접점에서 기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영상은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고민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소방관의 출동 환경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검게 그을린 소방복을 입은 소방관들의 미소를 지키고, 고위험 화재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이 모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화재 진압을 펼치려면 이전까지와 다른 특별한 해결책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현대차∙기아와 현대모비스, 현대로템이 소방청과 협업해 만든 결과물이 바로 ‘무인소방로봇’입니다.
무인소방로봇의 기반은 현대로템이 개발한 민/군 겸용 다목적 무인차량 ‘HR-셰르파(HR-Sherpa)’입니다. 2019년 콘셉트로 처음 등장해, 2021년 7월 국내 최초 군용 무인차량으로 납품된 모델입니다. 컨트롤러를 통한 원격 제어와 자율주행 모두 가능하며, 현장에선 차체 상단에 탑재한 장비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무기를 이용한 타격부터 물자 및 환자 수송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다목적’이라는 단어에 충실한 로봇입니다.
이 로봇의 또 다른 장점은 기동성입니다. 총 6개의 바퀴로 험난한 지형을 주파하죠. 비결은 현대모비스가 개발한 ‘인휠(In-Wheel) 모터 시스템’. 바퀴마다 전기모터를 심어 모든 바퀴가 독립적으로 구동할 수 있게끔 설계했습니다. 덕분에 일반적인 자동차처럼 앞바퀴를 비틀어 방향을 바꾸다가도 좁은 곳에선 360° 제자리 회전으로 탈출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무인소방로봇은 다목적 무인차량에 첨단 자율주행 보조시스템, AI 시야 개선 카메라, 고압 축광 릴호스, 6×6 인휠 모터 시스템 등의 핵심 장비를 더해 완성됐습니다. 그렇다면 무인소방로봇이 탄생한 과정은 어땠을까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무인소방로봇 기획에 참여한 현대로템 오정우 책임연구원과 현대모비스 신경호 책임연구원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무인소방로봇은 실제 사용자인 소방관의 관점으로 개발했습니다. 소방관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겪는 어려움을 기술로 해소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죠. 오정우 책임연구원은 화재 사고 현장에서의 ‘시야 확보’에 주목했습니다. “종종 소방관이 밀폐된 화재 현장에 출동했을 때, 농연(아주 짙은 연기) 때문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진입할 수 없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공장 화재처럼 시야 확보가 어렵고 붕괴 위험이 있는 공간에서 소방관 대신 무인소방로봇을 먼저 투입해, 내부 상황을 파악하고 구조 요청자를 탐색하고 싶었습니다.”
무인소방로봇 영상의 첫 장면은 자욱한 연기 속으로 들어가는 소방관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연기로 뒤덮인 실제 화재 현장은 단 1m 앞도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시야가 제한됩니다. 따라서 사람의 눈을 넘어서는 특별한 탐색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현대로템은 이를 ‘시야 개선 카메라’로 해결했습니다. 기본 원리는 장파 적외선(LWIR) 탐지입니다. 장파 적외선은 적외선 중에서도 파장이 가장 길며, 투과성이 뛰어나고 열에너지를 잘 감지합니다.
그러나 열복사 신호만으로 불꽃을 시각화하면 대비와 선명도가 크게 저하된다는 한계가 있었죠. 무인소방로봇 전용 ‘시야 개선 알고리즘’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이 덕분에 카메라가 수집한 정보 중 저주파 성분은 억제하고, 고주파 성분만 강조해 시인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오정우 책임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이 사물을 인식할 때 질감(Texture)보다는 형태(Shape)에 의존한다는 연구 결과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화재의 규모를 파악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진입할 차례입니다. 무인소방로봇은 불에 타 쓰러진 건물의 잔재 등 온갖 장애물을 헤쳐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열이나 충격에 의한 구동장치 파손에도 대비해야 하고요. 현대모비스의 인휠 모터 6개로 만들어진 구동계는 이와 같은 환경에 안성맞춤입니다. 각각 독립된 현가장치로 차체와 연결된 바퀴들은 노면에 유연하게 대응하죠. 무려 300mm 높이의 수직 장애물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기동 능력을 지녔습니다. 작전 중 모터 한두 개가 파손되더라도 나머지 모터가 주행을 이어갈 수 있죠. 이는 공기 주입이 필요 없는 에어리스(Airless) 타이어와 결합되어 매 순간 최적의 접지력을 유지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모터지만, 이 속에는 현대모비스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무인소방로봇이 요구하는 휠 토크는 승용차 보조 구동용으로 개발한 인휠 모터의 토크보다 50% 이상 높아야 했습니다. 감속기를 병렬로 추가하면 곧장 토크를 높일 수 있지만, 인휠 크기도 늘어나면서 조향 시 차체와 간섭이 발생했죠. 그래서 유성감속기를 휠 베어링 내부에 배치해 폭 방향의 부피 증가 없는 ‘휠 베어링 일체형 유성감속기’를 완성했습니다.” 더불어 모터는 17인치 휠에 통합하고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EPB)용 캘리퍼를 짝지었습니다.
무인소방로봇의 기동성이 중요한 이유 역시 ‘A Safer Way Home’ 영상에서 잘 드러납니다. 폭발이 일어나며 불이 붙은 구조물이 바닥에 떨어지면 장애물이 되고 소방관의 원활한 진입을 방해합니다. 연기에 가려진 불규칙한 지형은 소방관들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죠. 인휠 시스템은 이러한 변수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성능을 지녔습니다.
인휠 시스템에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드라이브 샤프트와 디퍼렌셜 기어 등 전통적인 부품이 사라지면서 각 바퀴를 보다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죠. 이는 에너지 손실 최소화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주행 효율과 응답성 모두 개선됐습니다. 다만 ‘극한 환경에서의 화재 진압’이라는 뚜렷한 목적 때문에 충분한 테스트가 필요했을 텐데요. 이에 현대모비스는 승용 분야에서 검증된 인휠 모터 및 인버터를 활용하고, 무인소방로봇의 요구 스펙에 걸맞은 유성감속기·휠 베어링 결합형 기어박스를 새롭게 개발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구동 시스템은 지하주차장이나 물류창고의 경사로도 거뜬하게 오르내리며, 경우에 따라 최대 시속 50km로 달려 빠르게 화재 현장으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인휠 시스템이 무인소방로봇의 ‘발’ 역할을 맡는다면, 명령을 내리는 ‘머리’ 역할은 ‘첨단 자율주행 보조시스템’이 담당합니다. 시야 개선 카메라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고, 주변 지형과 장애물의 형태를 인지해 충돌 위험을 최소화하죠. 이 기능은 다음 스텝인 ‘완전 자율주행 무인소방로봇’에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학습한 주변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이동하며 화재를 진압하는 무인소방로봇의 모습은, 물리적인 신체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점에서 ‘피지컬 AI’ 분야 경쟁력 확보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참고로 피지컬 AI란 로봇, 자율주행 자동차 등의 물리적 인공지능 기술이 현실 세계에서 스스로 보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인소방로봇은 20kWh 용량의 리튬폴리머 배터리를 탑재해 15시간을 운행할 수 있고, 전방의 방수포로 최대 50m 거리까지 물줄기를 뿜어냅니다. 소화에 필요한 물은 65mm 소방 호스를 통해 소방차나 소화전으로부터 공급받습니다. 이와 동시에 로봇 스스로를 고열로부터 지키는 기능도 적용됐습니다. 일명 ‘자체 분무장치’입니다. 오정우 책임연구원은 “지름 1.8mm의 미분무 노즐 24개가 분당 약 40L의 물을 차체 주변에 분사합니다. 이로써 500~800℃의 환경에서도 로봇 주변 온도는 약 50℃로 낮출 수 있었어요”라며 무인소방로봇이 화재 현장의 뜨거운 온도를 어떻게 버티는지 소개했습니다.
로봇이 소화를 시작했다는 건, 해당 로봇을 원격으로 조종하고 있는 소방관과 이미 멀리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이때부턴 원거리 통신의 안정성도 중요합니다. 투입된 장소가 지하거나 장애물이 많은 지형이라면 원격 신호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로템의 해답은 회절성(장애물을 타고 넘는 성질)이 뛰어난 2.4GHz S-밴드 대역 주파수였습니다. 원격조종기와 로봇 사이에 장애물이 없을 땐 5km 이상 통신이 가능할 정도로 출력이 높은 통신장치도 이식했습니다. 또한 신호 간섭을 줄이고 수신 감도를 높이는 ‘다중 편파(Dual Polarization)’ 안테나로 성능을 강화했습니다. 총 11회에 걸친 성능시험 결과, 직선거리 130m의 지하 1층에서도 원활한 원격제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작전의 마지막 순서이자 가장 중요한 순간은 ‘탈출’입니다. 소방관들은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소방 호스를 따라 진입 방향과 탈출 경로를 확보하곤 했습니다. 무인소방로봇에 장착된 ‘고압 축광 릴호스’는 이 과정을 더 수월하게 만들어 줍니다. 호스 스스로 빛을 내거나 반사하기 때문에 연기 속에서 길을 찾기가 훨씬 편리하죠. 영상 후반부에서 밝은 빛을 내며 소방관의 탈출로를 안내하는 모습은, 소방 호스가 물의 이동 통로 외에도 또 다른 값진 역할을 해낼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처럼 무인소방로봇은 긴밀한 협업과 깊은 연구 끝에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기존 무인화 로봇에 ‘소방’이라는 특수 목적을 더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길어지기도 했습니다. 오정우 책임연구원은 기획 초기 단계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극한의 화재 환경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신뢰성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소방로봇은 평범한 로봇과 달리 고온과 짙은 연기 등 최악의 환경에서 작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성능이 좋은 로봇이 아니라, 현장에서 반드시 작동해야 하는 장비를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신경호 책임연구원도 “무인소방로봇 같은 화재 진압용 특수목적차량에 인휠 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해선 구동계의 안정성과 신뢰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동력 전달 부품들의 구조적 내구성 확보가 필수적이었어요”라며 개발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다행히 무인소방로봇은 2.5t 이상의 무게로 약 60% 경사를 등판할 수 있는 강력한 군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물이 가득 찬 소방 호스를 끌며 발화 지점으로 진입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쯤 소방청과의 협업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최종 모델 제작을 위한 프로토타입 테스트 중에 벌어진 일이었죠. 무인소방로봇이 소방 호스를 견인하며 지하 주차장에 진입했는데, 호스가 주차된 차량의 바퀴 사이에 걸리며 호스 연결부 밸브가 파손됐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소방청과 함께 고안한 장치가 ‘고압 릴호스’였습니다. 호스를 끌고 다니는 게 아니라, 둥글게 말려 있는 호스를 실시간으로 풀면서 진입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바꿨습니다. 차체 디자인부터 방수 배관, 원격조종기의 컨트롤 개념까지 처음부터 다시 확립했던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현대차그룹이 제작한 무인소방로봇은 총 4대로 현재 수도권과 영남의 119특수구조대에 각각 1대씩 전달됐으며, 경기남부와 충남 소방본부에도 1대씩 배치될 예정입니다. 이에 따라 해당 특수구조대들은 전담 부서를 신설해 전문 인력과 운영 체계를 수립했죠. 월 2시간 이상의 이론교육과 4시간 이상의 실기교육으로 무인소방로봇 활용 능력을 키우고, 꼼꼼한 점검 및 유지관리로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끝냈습니다.
‘A Safer Way Home’ 영상에도 담긴 지난 1월 30일 충북 음성에서의 화재 현장 출동은 철저한 준비의 결실이었습니다. 불이 난 곳은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기저귀∙물티슈 제조 공장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원재료인 펄프에도 불이 옮겨붙었죠. 소방 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해 인력 254명과 장비 94대, 헬기 6대를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화재 발생 3시간 뒤에도 내부 연기와 열기가 여전했던 탓에 무인소방로봇을 동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수도권과 영남권 특수구조대에서 공수한 무인소방로봇은 짙은 연기 속으로 묵묵히 나아가며, 데뷔 후 첫 실전 임무를 멋지게 완수했습니다.
지난달 24일에는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수도권119특수구조대에서 무인소방로봇 기증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과 현대차 성 김 사장, 현대로템 이용배 사장, 소방청 김승룡 소방청장 직무대행 및 이진호 기획조정관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무인소방로봇은 공식적으로 소방관의 든든한 동료가 되었습니다. 정의선 회장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사투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소방관분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고 말하며, 무인소방로봇이 위험한 현장에 한 발 먼저 투입되어 소방관의 안전을 지키는 든든한 팀원이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김승룡 소방청장 직무대행도 “오늘 이 자리는 재난 대응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패러다임 대전환의 첫걸음이다. 앞으로도 현대차그룹 등 민간과의 혁신적 연대를 통해 첨단 과학 기술을 현장에 적극 도입해 나가겠다”라며 피지컬 AI로 펼쳐질 ‘소방 AI 대전환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습니다.
“무인소방로봇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위험한 순간에 먼저 들어가는 동료이며 방패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소방관이 한 명이라도 더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정우 책임연구원의 마지막 답변은 이 세상에 무인소방로봇이 필요한 모든 이유와 가치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 ‘소방관 회복지원차’로 맺은 현대차그룹과 소방청의 인연은 무인소방로봇을 통해 새롭게 이어져,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영웅들을 다시 한번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소방관들의 안전을 위한 현대차그룹의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