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붐으로부터 점화된 인공지능 혁신이 다음 단계로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간 디지털 영역에서 텍스트와 이미지를 만들던 생성형 AI 중심의 흐름이, 현실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로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다. 60여 년 전 세워졌던 오랜 이론이 비로소 산업의 거대한 트렌드로 부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인공지능 분야의 석학, 신진우 KAIST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피지컬 AI의 본질에 대해 짚어봤다.
오랜 시간 이론에만 머물던 피지컬 AI가 산업 트렌드로 급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디지털 AI 분야의 비약적인 성장이 있었다. 지난 수년간 인터넷의 무한한 데이터를 자원으로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과 멀티모달(Multimodal) 모델이 이미지, 텍스트, 비디오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축적하며 성능을 높여온 것이다. 그렇게 발전한 디지털 공간의 생성형 AI 모델은 물리 세계의 AI 구현을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신진우 교수는 이와 같은 기술적 토대가 피지컬 AI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LLM 기반 생성형 AI의 발전은 피지컬 AI가 필요로 하는 데이터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학습시키지 않아도 되는 ‘기반 모델(Foundation Model)’이 마련되면서, 초기 학습 비용과 기술 실현의 문턱이 낮아진 것입니다.”
기술적인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이 피지컬 AI로 향하면서 관련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의 본질을 오해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신진우 교수는 많은 이들이 피지컬 AI를 로보틱스 기술과 동일시하는 인식을 두고 운을 뗐다.
“피지컬 AI를 곧 로봇 기술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특정 형태의 기계가 아니라 물리 세계에서 작동하는 지능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자율주행 모빌리티와 스마트 팩토리, 자율 물류 시스템, 그리고 인간과 로봇의 협업 환경 모두 피지컬 AI의 범주에 포함해 생각해야 합니다. 현실 세계의 복잡성과 불확실성 속에서 안전하고 신뢰성 있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최종적으로 행동하는 지능을 구현하는 게 피지컬 AI의 핵심입니다.”
그러면서 신진우 교수는 피지컬 AI를 단순한 기술 트렌드로 치부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저는 피지컬 AI가 하나의 유행이 아닌 산업 구조를 재편할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동차는 지능형 이동 로봇으로, 공장은 자율 운영 시스템으로, 물류는 다중 에이전트 기반의 물리 네트워크로 진화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지컬 AI를 특정 제품이나 모델의 기술 발전 정도로 이해하지만, 그 본질은 물리 세계를 이해하고 예측하면서 안전하게 행동하는 지능을 산업 규모로 구현하는 데 있습니다.”
한편, 그는 피지컬 AI가 그간 논의된 생성형 AI의 단순한 연장선으로 볼 수 없음을 피력했다. “디지털 공간과 달리 현실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제약 조건이 작동합니다. 응답 지연에 따른 실시간성, 물리 법칙과 동역학, 센서 노이즈와 예외 상황 대응,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성이 핵심 변수입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동작하는 생성형 AI는 잘못된 답을 수정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피지컬 AI의 오판은 곧장 물리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처럼 피지컬 AI는 행동 실패에 따른 기회비용과 대가가 막대하다. 피지컬 AI를 대표하는 자율주행 모빌리티나 휴머노이드 역시 찰나의 행동 지연과 미세한 센서 오류가 큰 피해로 직결되는 환경에 놓여있다. “피지컬 AI는 잘못된 판단이 즉시 물리적 사고나 인명, 재산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디지털 AI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신뢰성과 안전 검증이 요구됩니다. 또한 인지-판단-제어 하드웨어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되어 작동하므로 개별 모델 성능이 아닌 전체 시스템 차원의 통합 설계와 검증 역량이 보다 중요합니다.” 신진우 교수가 설명을 더해 논제를 정리했다.
그렇다면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들이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는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신진우 교수는 모빌리티 기업들의 최근 행보가 사업 확장과 더불어 기존 모빌리티 기술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하며, 그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테슬라나 현대차그룹과 같은 모빌리티 기업이 휴머노이드에 주목하는 이유는 휴머노이드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자율주행과 제어, 에너지 관리 등 기존 모빌리티 기술을 확장 적용할 수 있는 ‘종합 피지컬 AI 플랫폼’이기 때문입니다. 즉 완성차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인지–판단–제어 기술과 대규모 양산 경험을 인간형 로봇에 이식함으로써, 물리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AI 시스템 기업으로 진화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됩니다.”
그의 설명대로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를 일찍이 인수하고 그룹 내 로보틱스랩을 설립해 휴머노이드를 비롯한 산업 현장에 필요한 로봇을 개발해 왔다.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아틀라스(Atlas)와 스팟(Spot)을 통해 증명한 독보적인 동역학 제어 기술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포함한 그룹 전체의 피지컬 AI 역량을 축적하는 중이다.
이처럼 피지컬 AI는 단순 자동화에 머물던 로봇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자율주행 차량이 예측 불가능한 시나리오에 대응하면서, 스마트 팩토리의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는 핵심 동력이 된다. 신진우 교수는 상이해 보이는 각 영역이 기술적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동시에 개발하는 기업이 학습 속도와 스케일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대표적인 피지컬 AI 분야인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스마트 팩토리는 서로 다른 산업 영역에 있는 것 같지만 인지-판단-제어로 이어지는 기술 구조와 실시간성, 안전성, 예외 상황 대응 등의 핵심 과제에서 공통점을 가집니다. 따라서 한 분야에서 축적된 시스템 통합 경험과 실패 사례, 검증 체계는 다른 영역으로 이식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 됩니다.”
신진우 교수는 곧바로 보충 설명을 더해 설득력을 키웠다. “게다가 기술 응용 방향성이 다르더라도 AI가 학습해야 할 객체의 운동, 충돌, 마찰, 인간과의 협업 패턴 등 물리적 상호작용 역시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특정 영역에서 개발된 기반 모델과 데이터는 다른 피지컬 AI 영역에서 재활용할 수 있으며, 이를 동시에 개발하는 기업은 학습 속도와 스케일 측면에서 구조적인 우위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산업 현장에서 쓰일 피지컬 AI 기술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물리 세계의 데이터를 충분히 축적해야 한다. 신진우 교수는 피지컬 AI가 거대한 디지털 자산을 바탕으로 성장한 생성형 AI와는 다른 차원에 있음을 설명했다.
“LLM 기반 생성형 AI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대규모 GPU 인프라와 같은 막대한 컴퓨팅 자원의 확보이고, 둘째는 인터넷에 축적된 언어·이미지 데이터가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학습 자원이었다는 점입니다. 반면 피지컬 AI 기술 실현에 필요한 물리적 상호작용 데이터는 인터넷에서 대량으로 확보할 수 없습니다. 이 데이터는 실제 로봇의 작동과 자동차의 자율주행, 그리고 산업 현장에서 반복적인 테스트와 장기적인 운영을 거쳐 축적해야 하며, 여기에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신진우 교수는 피지컬 AI의 완성도가 실환경 데이터의 축적과 장기 검증 과정에 달려 있음을 강조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환경부터 스마트 팩토리의 제조 및 물류 현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을 피지컬 AI의 거대한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 있다. 도심 도로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실증하며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축적하는 한편, 글로벌 생산 거점을 ‘소프트웨어로 움직이는 공장(Software Defined Factory, SDF)’으로 진화시켜 로봇과 설비가 상호작용하는 변수 정보를 확보 중이다. 나아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실제 제조 공정에 투입하기 위한 상용화 검증까지 병행함으로써, 각 도메인에서 수집된 물리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신진우 교수는 그룹 차원에서 전방위적인 피지컬 AI 개발 체제를 구축한 현대차그룹의 행보에 대해 “완성차, 로보틱스, 스마트 팩토리, 그리고 물류 자동화를 하나의 그룹 내에서 동시에 추진하는 구조는 일반적인 기업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구조는 사업 다각화라는 수익 구조 개선뿐만 아니라 피지컬 AI의 공통 아키텍처와 데이터를 공유하는 전략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분석했으며, “통합 구조가 데이터 축적과 검증 체계를 빠르게 이식하여 기술 성숙 속도와 산업 적용 규모에서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의 환경적 특성과 산업 구조가 피지컬 AI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글로벌 기준에서 우수한 AI 인적 자산과 반도체·전자·제어·정밀 제조 기술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라는 사회적 압력도 존재하기 때문에, 로보틱스와 자동화 기반 피지컬 AI에 대한 수요가 명확한 데다 실증 가능한 제조·산업 환경도 풍부합니다.”
신진우 교수는 우리나라의 인프라적 강점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반면 단기 수익이 불확실한 영역에 대해 장기적인 투자를 주저하는 경향과 실패를 감내하지 않고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조직 문화도 피지컬 AI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고 이야기하며 기업 문화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조 기반 기업의 장기적 투자 역량이 피지컬 AI 시대를 판가름하는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과거 LLM 발전 과정에서도 보았듯, 최소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대규모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와 리더십을 가진 기업이 유리한 위치에 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기술 자체보다도, 장기적 확신을 바탕으로 꾸준히 투자하고 실패를 감내할 수 있는 조직 역량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진우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피지컬 AI 시대의 성패는 고도화된 인공지능을 실제 물리 환경에 안전하고 정교하게 결합하는 기술력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가상공간의 데이터가 실제 도로와 공장의 물리 환경에서 안전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현장 데이터와 이를 검증할 수 있는 기반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기술 개발과 하드웨어 양산, 그리고 실제 운영을 통한 기술을 실증하는 그룹 차원의 밸류체인을 통해 피지컬 AI 기술의 가능성을 철저히 진단하고 있다. 또한 단기적인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 구축하고 있는 모빌리티 생태계에 피지컬 AI를 접목하기 위해 시스템 통합 역량을 지속적으로 축적하는 중이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은 향후에도 피지컬 AI를 비롯한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며, 고객의 삶에 새로운 가치를 선사하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글. 신진우 (KAIST 김재철AI대학원 전기 및 전자공학부 ICT 석좌교수)
KAIST AI 대학원 및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서울대학교 수학·컴퓨터공학 학사를 거쳐 조지아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알고리즘과 머신러닝 분야에서 피지컬 AI와 생성형 모델을 아우르는 최첨단 AI 기술을 연구하며 다양한 산업 현장에 인공지능이 안전하게 이식될 수 있도록 기술적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복잡한 수식 너머 AI가 물리 세계에서 인간과 공존할 미래를 설계하는 데 매진 중이다.